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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심연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평점 :
죽음은 끝이 아니라 어쩌면 생의 연장선상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죽고난 후, 그녀의 글을 소비하고 있는 우리들은 책 안에서 그녀의 숨을 느낄 수 있다.
'마음의 심연'이라는 이름의 사강의 미발표 유작이 국내 최초 번역으로 10월에 출간되었다. 2019년 출간 당시 독자들은 파리의 책방 앞에 길게 줄을 섰고, 파격적인 초판 부수가 단기간에 품절되기도 하여 사강의 위상이 건재함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사강의 미발표 유작을 만나는 이 순간, 설렘이 가득하다.
아들과 아버지, 남편과 아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진정한 대화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 각자 자기 재산과 권위를 틀어쥔 채 상대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p. 155)
부와 권력을 가진 집안 크레송 일가, 대저택에 살면서 풍요로운 생활을 하는 그들은 동상이몽으로 마음만은 빈곤하다. 서로 간의 존중이 결여되고 남편의 기를 꺾어버리는 여자 마리로르. 그녀에겐 남편은 막대한 재산의 상속자라는 것을 빼고는 결점투성이의 인물일 따름이다.
삶은 투쟁이었다. 두 사람 중 하나가 주도권을 쥐어야 했고, 승자는 언제나 예외 없이 그녀, 마리로르였다. (p. 43)
더욱이 교통사고로 정신병원에 2년간 요양하고 돌아온 후로 마리로르의 경멸 어린 시선은 짙어졌다. 노골적으로 남편을 깎아내리며 무시하는 시선을 주곤 했다. 같은 방, 같은 침대를 사용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마리로르. 아름다운 얼굴처럼 그녀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예뻤다면 좋았으련만.
어린 시절부터 애정에 굶주린 그는 오랫동안 자신을 불구자 같은 존재로 여겨 왔었는데, 그 사고로 인해 공식적으로 불구자가 되고 만 것이다. (p. 164)
기적적으로 치유되어 돌아온 남편 뤼도빅은 집에 와있음에도 더한 마음의 빈곤을 느끼게 된다. 부를 획득하고자 하는 목적 분명한 결혼, 그 안에는 남편에 대한 애정이나 연민 따윈 없다. 혐오의 눈빛, 2년간의 긴 요양생활 후 온 집은 그에게 생의 마지막을 고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뤼도빅의 아버지인 앙리는 며느리가 못마땅하다. 착하고 여린 아들과 한 침대에 오르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앙리에게 며느리 마리로르는 예쁘장한 얼굴을 한 살인자와 다름 아니었다.
아들이 건재함을 과시해주기 위해 아버지 앙리는 파티를 열고자 한다. 그러던 차에 안사돈까지 부르기에 이른다. 파티도 있고 소원한 딸내외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여주십사 요청하고픈 마음이 담겨있을 터. 뤼도빅의 장모이며 마리로르의 어머니인 파니는 남편과의 사별 이후 홀로 지내다 3주간 머물기 위해 크레송 일가를 찾아왔다.
차디찬 얼음장같은 아내와 달리 아내의 어머니인 파니는 따스한 햇살과도 같다. 마리로르의 냉대와 경멸에 굳어버린 남자 뤼도빅은 파니로 인해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낀다. 흡사 막장드라마처럼 엄마와 남편이 정을 통하고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이 파격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를 담고 있다. 소설의 결말은 열린 결말이다.
나는 이러한 이야기는 소설 안에서만 있기를 원한다.
소설이기에,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며 넓은 아량을 베풀어본다.
소설 속에선 그 어떤 상상의 나래도 다 수용할 수 있으니.
※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