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다니는 유치원 안에는 플레이타임이라는 명칭을 지닌 놀이시설이 구비된 장소가 있다. 매주에 세 번 그곳에 가서 놀곤 하는데 키즈카페 부럽지 않다. 그곳에 놀기 위해선 미연에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발레슈즈를 신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아이의 발이 커져서 새로 발레슈즈를 구입해야 했다. 지난번에는 엄마 임의대로 검은색을 사주었는데 이번엔 아이에게 선택권을 줘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여자처럼 핑크색 슈즈를 고르는 것이다. 올바른 성역할 학습을 위해 '안돼!'라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정말?', '괜찮겠어?', '후회하지 마!'라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럼에도 아이의 의지가 확고해 핑크색 발레슈즈를 사주었고 아이는 꽤나 만족스러워하며 잘 신고 다닌다.
아이는 핑크는 여자색 블루는 남자색이라 이분법적 사고로 규정하지 않는데, 엄마인 내가 문제다.
아이가 당당하고, 나답게,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바람에 이 그림책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는 잘못된 성역할을 주입시켜주는 것이 지천에 널려있다. 직업을 예로 들면 여의사, 여경찰이라고 자연스레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의사나 경찰은 으레 남자들이 하는 직업이란 의식이 팽배히 자리 잡은 까닭이다. 나 또한 그런 분위기 속에 오랫동안 살아오다 보니 딸은 여자답게, 아들은 남자다운 행동을 하기로 무의식 속에 가르쳐왔던 듯하다.
이번에 다산어린이에서 나온 그림책 시리즈 '당당하게 나답게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길라잡이 역할을 해준다. 아이가 타인의 눈치를 보고, 부모의 종용에 의해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감추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총 5권의 시리즈 중에서 '모두의 장난감'이라는 제목의 책은 아아들에게 가장 친숙한 장난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공주 인형은 어여쁜 드레스를 입고 굽 높은 하이힐을 신으며 미모를 뽐낸다. 영웅 캐릭터는 합기도와 태권도에 단련된 듯 탄탄한 몸에 그 어떤 흉악범에도 겁먹지 않고 맞서 싸운다. 이런 모습은 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그릇된 판단이 실린 역할 놀이다. 그런데 이 그림책을 읽으면, 과연 인형들도 그러할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아이들이 놀고 떠난 밤늦은 시간의 장난감 가게. 그곳에 거주 중인 장난감들은 낮 동안 힘들었던 일을 하소연한다.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울먹이는 티라노사우르스라니.
"나는 스피노 사우르스랑 하루 종일 싸웠어. 어린이들은 나를 용감한 공룡으로 알고 싶지만, 사실 겁이 많아."
이 책을 본 아들의 반응은 '이상하다?'라며 아리송한 표정이다. 그러면서 '아닌데, 티라노는 센데...'라며 그림책을 부정하는 듯한 아이.
공주 인형은 공주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활동하기 좋은 옷으로 입는다. 그리고 멋지게 운전하며 스피드를 즐기는 공주 인형을 보자니 유쾌 통쾌 상쾌한 매력이 넘친다. 힘센맨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인형의 집 속 청소하기. 다소곳하게 앉아 빨래를 개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파마를 제법 잘 마는 티라노 공룡과, 기다란 다리로 통쾌하게 골대에 축구공을 날리는 공주 인형.
장난감 인형들은 밤에 본래의 모습으로 신나게 노는 것이다. 그리고 열두시가 되면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처럼 아침이면 자신을 감추고 아이들을 맞이한다.
그런데 이번에 장난감들은 이번 한 번만 이대로 있어보려고 한다. 이를 본 어린이들은 처음엔 낯설어하는 듯 싶다가도 곧 어색해하거나 쭈뼛거리는 법 없이 새로운 놀이를 하게 된다.
어린이들의 학습능력을 두고 스펀지 같다는 말을 한다.
방법을 몰라서 그럴 뿐, 약간의 도움을 준다면 아이들은 금세 새로운 역할놀이에 빠지게 될 것이다.
아이의 잠재된 자질을 꺼내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부모가,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하지 싶다.
그런 의미에서 더없이 반가운 그림책이다.
※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