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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 상 ㅣ 스티븐 킹 걸작선 7
스티븐 킹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5월
평점 :
[그것]은 잃어버린 유년시절의 기억부터 시작한다. 마이클 핸론이라는 왕따클럽의 친구로부터 받게 되는 한 통의 전화로 서서히 안개가 걷히는 유년시절의 데리.
도대체 대명사 '그것'으로 1800 페이지에 달하는 기나긴 장편에서 무엇을 얘기할지 너무 궁금했고, 상권이 끝나도록 [그것]은 머리카락 한 올밖에 내밀지 않았지만, 중권과 하권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도록 만드는 스티븐 킹의 이야기 흡인력, 거미줄처럼 정교하게 펼쳐진 그물의 매듭과 매듭에서 풀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대하면서 끊임없이 한 질문은 '그것이 무엇일까'였다.
처음에는 데리로 지칭되는 이 세계에 하수처럼 지하를 흐르고 있는 폭력성, 잔혹한 편견과 배척, 그 사이에서 무관심과 외면만이 그것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다. 곧 그것은 데리이고, 데리에 유년을 묻고 잊은 왕따클럽의 7명이며, 비오는 습한 공기에서 훅 끼쳐오는 맡기 싫은 구린내였고, 어딘선가 들려오는 불길한 속삭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3권을 다 읽고 나니,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모든 것을 지칭한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저마다 다르지만 결국에는 같아지는 것이며 기억하는 동시에 잊는 것이었고, 유년을 지닌 성년이 노년을 맞는 방식이었다. 스티븐 킹은 소설의 마지막에 유한성을 깨달은 후 새롭게 다가오는 시간에 대해서 말한다. 그 유한성을 넘어서는 사랑과 욕망의 영원성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것을 물리쳤던 것은 근거없이도 의심하지 않았던 그것, 믿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