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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왜란과 호란 사이 - 한국사에서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
정명섭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9년 11월
평점 :
마키아벨리는 두 세력 간의 다툼이 벌어졌을 때 어정쩡한 중립보다는 한쪽의 편에 서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중립을 지킨다면 두쪽의 미움을 사지만 한쪽의 편에 선다면 적어도 한쪽의 지지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간 수많은 대중교양서가 범한 오류들, 병자호란에 있어 중립외교와 친명외교 사이에서 광해군과 인조를 놓고 벌어진 수많은 흑백론적 구도를 벗어나 광해군이 벌였던 실책에 대해서도 여과 없이 폭로한다. 이 책은 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상황을 홍한수라는 아동대 출신 훈련도감 조총수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며 중간중간 그 간의 상황들을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덧붙인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 당시 상황에 대해 마치 손에 잡히듯 느낄 수 있는데 이는 마치 귄터 벤텔레의 소설로 만나는 근대 이야기를 생각나게 했다. 병자호란에 대한 다양한 학계의 연구와 결과를 반영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간 점에서 이 책은 분명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 또한 미래인의 관점에서의 결과론적 시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에 아쉬웠다. 이 책은 신료들의 명분론 및 친명의식을 비판하지만 생각해보면 병자호란 자체는 물론 인조의 국서로 인해 일어나긴 했지만 조선의 입장에서는 설사 청에 유화적으로 나간다고 해도 과연 병자호란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모를 일이다. 청에 유화적인 모습을 보였던 몽골의 부족들도 숱한 전쟁에 징병되고 또 천하를 얻고 나서 청은 몽골의 세력을 약화하기 위한 조치들을 많이 취하게 된다. 만약 조선이 전쟁없이 중립을 선언한다 했더라도 과연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을까? 청과 명의 요구를 둘다 거절할 수는 있을 것이다. 허나 그때 뿐이며 나중에 천하를 얻은 한 국가가 괘씸죄를 물어 침공한다면 무슨 명분으로 막을 것인가.
결국은 그들을 막을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는 것인데 그를 위해서는 강력한 야전군을 꾸려야 한다. 하지만 이미 왜란의 여파에 광해군기 각종 공납과 궁궐공사의 여파로 파탄난 재정에 기껏 꾸려놓은 이괄의 야전군은 반란으로 공중분해되었다.
심하전투 당시에도 물론 명나라군의 작전상의 실패도 있었겠지만 결정적으로 후금군의 전술능력은 뛰어났다. 심하전투의 전개는 전장에서의 기동력을 이용한 각개격파, 보병과 기병의 제병합동 전술은 명나라 최고의 정예병들인 사천병조차 당해낼 수 없었다.
병자호란 시기에도 소규모 부대 단위로 나눠서 상대의 방어선을 돌파한 다음 상대를 허를 찔러 상대의 지휘부를 바로 타격하는 전술은 나폴레옹의 이탈리아전선에서의 전술을 보는 듯하다. 홍타이지의 친정은 조선의 허를 찔렀고 만약 남한산성에 오래 버틸 수 있는 식량이 있었다면 각지의 근왕병이 몰려들고 책에서의 묘사와 달리 승군과 의병또한 소집을 홍타이지의 청군은 스페인에서 나폴레옹군대가 그러했 듯 지리멸렬하게 버티다 퇴각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청나라 기병이 조총을 든 군인에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었던 방책이 나와있지만 반대로 38년간의 준비를 말하는 이 책에서는 그에 대해 대비할 수 있었던 효과적 방책에 대해서는 전혀 제시하고 있지 않다.
결국 이 책에서는 이때의 상황을 지금에 대입하여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우리의 효과적 대응을 촉구하지만 이는 전혀 핀트가 나가있다. 시대적 상황, 우리나라의 위치 어느 것 하나 같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바라보는 통사적 교양서로서 훌륭한 진입문이 되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