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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퍼온글] 타고난 조반자, 모택동



-젊은 시절의 모택동-

*모택동(1893~1976)

모택동은 청조말기인 1893년, 호남성의 성도인 장사 부근의 상담현에서 태어났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빈농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평생의 동료였던 주은래나 주덕과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와는 거리가 먼 태생을 갖고 있다.(주은래는 학자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주덕은 운남성의 군벌이었다) 모택동의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자작농으로 약간의 토지도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모택동을 비롯한 자식들에게 지나치게 인색하였고 자신의 장남인 모택동에게 고등교육을 시킬 생각도 갖고 있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인색하고 사랑을 줄줄 모르는 냉담한 성격의 아버지에게 모는 반항심을 품게 되었고 이러한 비뚤어진 부자관계는 그가 일생을 조반자로 살아가게 되는 토대와 배경이 되었던 것 같다.

 1920년 대에 중국에서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의 이상과 의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 대부분은 가정에서 권위적인 아버지와의 불화끝에 집을 뛰쳐나온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열혈 청년들이었다. 1917년의 러시아 혁명에 깊이 영향받고, 서양 열강에게 허덕이는 후진적이고 봉건적인 중국을 공산주의라는 도구로 개혁하려는 이상을 품고 있었지만, 동시에 공산주의는 아버지 세대의 낡은 가치에 저항한다는 의미도 아울러 갖고 있었다. 1922년 부터 시작된 공산주의 운동이 그 뒤에 모든 종류의 역사와 전통을 거부하고 그것을 파괴하는 것에 전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이 이것을 증명한다.

 다시, 젊은 반역자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면, 모택동은 호남성의 부유한 성도인 장사로 나와, 변발을 잘라버리고 중학교를 다니며 여러가지 진보적인 사상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났을때는 혁명군에 가담하기도 하고 사범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그는 여기서 양창제라는 교수를 만나는데, 이 교수는 모의 일생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이었다. 1920년 모는 양창제의 딸과 결혼하는데, 그녀의 이름은 양계혜였다. 엄밀히 말하면 양계해는 모의 두번째 부인이었다. 고집센 그의 부친이 정해준 얼굴도 모르는 여인과의 결혼이 그의 최초의 결혼이었지만 이것은 모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족쇄와도 같은 인연이었을 뿐이다.   

양계혜는 두 아들을 낳았는데, 1930년 국민당경찰에게 붙잡혀 처형당하고 말았다. 모택동은 1920년 북경으로 가서 중국에 공산주의를 최초로 전파한 사상가와 만나게 된다. 바로 '이대교와 진독수'가 그들이다. 21년에는 중국에 최초로 공산당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으며, 이때 공산당의 호남성 대표로 선출되었다.

 모택동이 1927년, 정강산으로 들어가 산도적(?)들을 모아 중국 공산당 최초의 군대인 '홍군'을 만든 것은 그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사실 그가 홍군을 만들기 전에는 그는 그저 공산당 내의 열성적이고 착실한 간부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공산당 내에는 그보다 영향력이 높은 중요한 인사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가 만든 홍군은 주덕군과 합하면서 더욱 규모가 커졌고 31년에는 서금소비에트를 세우고 그 주석이 될 수 있었다. 



-1913년 경의 모택동-



-연안 시절의 모택동- 1935년 장정을 끝마치고 안착한 공산당의 수도 연안의 토굴집(요동) 안에서





-모택동과 주은래- 문화대혁명 당시 공산당 내의 서열 1위는 모택동, 2위는 주은래, 3위는 모의 후계자로 지목된 임표였으며 4위는 강생, 5위는 모의 야심찬 부인이었던 강청이었다.



-모택동과 하자정- 양계혜가 처형당하고 1930년에 재혼한 부인인 하자정은 모의 아이를 셋이나 낳았지만 그에게 이혼당하고 말았다. 1934년, 홍군이 국민당군에게 쫓겨 대장정에 오르기 직전, 하자정은 아직 어린 두 남매를 강서성의 농부에게 맡긴다. 험난한 피난길에 아이들을 동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모택동은 중일 전쟁이 끝난 후에야 아이들을 찾아나설 수 있었지만 어디서도 농부와 아이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1937년, 연안에서 하자정은 모의 딸을 낳았지만  모가 다른 여인과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공산당 특별법정에 남편을 고발하지만, 법정은 오히려 모의 편을 들어 하자정모녀와  모와 바람을 피운 통역을 연안에서 추방시키고 만다.



-장개석과 모택동- 1945년 8월 찍은 사진. 일본의 항복 후, 두 사람은 중경에서 만나 회의를 갖는다. 서로의 속내를 감추고 만난 독재자들,,, 4년 후 공산당군(인민해방군)은 내전에서 승리하여 정식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다.



-김일성과 모택동(1954)- 둘 다 너무 뚱뚱하다는....



-모택동과 장남 모안영- 양계혜가 낳은 장남, 모안영은 동생 모안청과 함께 러시아에서 교육받았지만, 50년대 후반, 중소분쟁이후(어쩌면 그 이전부터) 모택동은 자신의 아들들을 러시아로 보내 교육시킨 것을 후회했다. 장남인 모안영은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휴가를 즐기는 모택동-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택동- 1950년대부터 임표에 의한 모택동의 우상화는 시작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것은 당연시되어 갔다.



-하향응과 모택동- 하향응은 송경령과 더불어 중국혁명의 어머니라고 할만한 인물이다. 그녀는 또한 중국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기도 하다. 국부 손문(쑨원)의 동지이자 국민당의 좌파였던 남편 료중개가 암살당한 후 그녀는 송경령과 더불어 국민당내부의 좌파를 이끌며 공산당과의 연합에 힘썼다.



-모택동과 중국의 마지막 황제, 부의- 공산당 인사들은 부의를 신중히 다뤘다. 부의는 청조의 마지막 황제로서 공산주의가 어떠한 인간유형도(심지어는 황제조차도) '공산주의적 인간'으로 개조해 낼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 증거였기때문이다.( 장개석이라면 그를 간단히 죽여 없앴을 것이다) 1967년,문화혁명의 와중에 부의는 방광암에  걸려 돌봐주는 이 없이 병원의 한구석에서 쓸쓸히 죽었다.



-모택동과 에드가 스노우- 에드가 스노우는 중국홍군, 더 정확히 말해, 중국 최초의 공산주의자들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린 책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해진 미국출신의 기자이다. 그는 전 생애에 걸쳐 죽는 순간까지도 변함없이 중국공산당과 모택동을 신뢰했다. 그는 중국과 대결관계에 있는 소련이나 모택동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철저히 나쁘게 썼다.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작품, 마오(Mao)-

 모택동의 실책은 1956년의 반우파 투쟁과 58년의 대약진 운동, 그 후의 문화대혁명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6억 5천 만명의 중국인민들을 대상으로 어처구니없는 공산주의 체제 실험을 반복했고 자신의 권력의지를 드러낸 문화대혁명에서 중국의 경제, 문화상태를 약 20년 정도 후퇴시켰다.

 56년에 우파로 지목된 사람들은 아무 잘못도 없이 우연히 우파로 지목되었으며 그후 마오가 죽을때까지 약 22년 간 강제수용소에 격리되어 죽는 것 보다도 못한 삶을 연명했다.

58년 시작된 3면 홍기운동의 일환이었던, 대약진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부의 아들로 죽었던 모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 주었다. 대약진 기간동안 아이들은 엄마의 품을 떠나 병영화된 탁아소에서 집단으로 양육되었으며 이는 가족이라는 제도자체를 없애려는 모의 어리석은 야심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참새와 파리가 해조, 해충이라는 모의 주장에 따라 중국인들은 들판으로 내몰려 이것들을 잡아야했다. 모의 주장에 의하면 이것들을 없애야 농업생산량이 늘고 쾌적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중국인들은 공공장소에 나갈때마다 파리채를 휴대해야 했다. 어디든 집밖으로 나가려면 파리채가 필수였다. 재화가 귀한 중국에서 혹여 파리채를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그 사람은 외출을 포기하고 집안에만 있어야 했다.

 또한 "사유재산의 부정"를 가장 기본으로 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집의 담벽은 사유재산을 상징하는 것이라 해서 온 중국의 담을 철거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인민들은 담벽을 허물었고, (당연하게도)도둑은 증가했다. 가장 엽기적인 사건은 1965년에 있었다. 8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북경성을 허물어 버린 것이다. 북경 외곽을 둘러싼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성벽을 모의 명령 한마디에 철거시켜 버린 것이다. 이제 우리는 박물관에서나 북경성을 볼 수 있을 뿐이다.거대한 북경성의 성벽이 무너지는 소리는 중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중국에는 "500년마다 한번씩 반드시 황제가 일어선다" 는 전설이 있다. 1960년대에 중국인들은 이 황제가 모택동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에게는 야심찬 공산주의체제의 설계도가 있었고 개인숭배에 세뇌당한 중국인민들은 이 설계도가 약속하는 천국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천국은 계급투쟁을 핵심으로 하여 사람들의 창의성과 의지를 서서히 말살시키는, 평균화된(평등이 아니라) 자급자족사회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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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박완서

사실 박완서를 별로 읽지 않았다는 것이 좀 부담스럽다.

원래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군대에서 그 많던 싱아...를 조금씩 보다가(마음에는 들었는데) 다 못본 걸 아직도 읽을 기회를 못 얻었다.  그 후로 그 남자네 집을 읽은 게 다인데, 이 소설은 별로였다. 생각나서 옛날에 끄적댄 거 밑에 달아놨다.

오늘 문득 밥먹다가 앤님이랑 박완서 얘기를 했는데, 기억해 두려고 써 본다.

산책-예전에 박완서의 대표작들을 좀 봐야지 했는데 계속 못 보네요. 엄마의 말뚝이나 나목을 안 보고서야 좀 그렇겠죠?

앤님-그렇지 정말 좋은 소설이지.

산책- 근데 지난번에 그남자네는 너무 별로여서 또 좀 그래요. 참 거북헌 게 박완서는 소설에서 "미군은 적어도 강간은 안하니까" 하고 언급을 하던데 이해가 안돼요. 우리 어머니 얘길 들어도 마을에 방아간 집 아들이 미군 총에 맞아 죽었다던데요. 부인을 강간하려는 거 말린다고.... 사실 방아간집 아들이면 그 시절 동네 유진데도 그랬다는 건 한국 민심에 개의치 않았다는 거잖아요. 또 강준만의 한국현대사산책에 보니 그 무렵에 미군의 강간 문제가 굉장히 유명했드만요. 동아일보 같은 데서 대서특필 됐었다는데 박완서는 소설에서 그렇게 단호하게 언명하다니 이해가 안 돼요.

앤님-자긴 안 당했나 보지 뭐(웃음) 박완서가 좀 그런 데는 있어. 내가 80년대에 박완서 소설을 넘 좋아해서 거의 다 읽었어. 선배들이 태백산맥 읽는데 난 박완서 읽는다고 욕도 많이 먹었지. 난 그래도 사람들이 왜 박완서를 이해 못하나 하고 안타까워했는데, 나중에는 엄청 뜨더라. 박완서 소설은 당시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게 있었어. 뭔가 역할모델이기도 했고. 한국현대사를 개인사적으로 겪으며 헤쳐나왔잖아. 그걸 겪으며 생각한 것들도 만만찮게 있고...

산책-그많던 싱아는 좋았어요 다 읽진 않았지만.

앤님-사실 그게 다야. 거기 박완서인생이 다 들어있고 다른 소설들은 거기서 가지쳐나오지. 엄마의 말뚝은 엄마 얘기, 나목은 오빠 얘기...뭐 그런 거.사실 박완서 글들은 굉장히 선민의식에 싸여 있어. 엄마가 박은 말뚝이 사실은 선민의식이지. 넌 다르게 살아라고 하는데... 박완서에 끌리는 부분도 그런 거와 관련 있는 듯해. 특히 여자들이 80년대 어름에 그렇게 살고 싶었던 거고. 진보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자기가 좀 앞서 나간다는 선민의식이 있었고, 어쩌면 강박관념일 수도 있고. 90년대 이후에 박완서가 변했네 하는 말도 있지만 난 아닌 것 같아. 박완서는 원래 그랬던 거지. 예전에는 안 드러나 있던 게 이제 보인 거고, 또 그때는 좀 감추고 있었을 수도 있고. 그러니 박완서가 조선이랑 얽혀드는 게 자연스럽지.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차이도 모르겠다잖아. 조선일보기자와 친해서 거절할 수 없다잖아. 친하면 더한 것도 하겠다는 거지. 안 친해서 문제지.

사실 박완서를 워낙 좋아했어서 별로 비판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박완서가 소설에서 앞으로 계속 나가기를 바랐는데, 그러지 않더라. 앞 작품에서 좀 전진했다가 뒷작품에서는 뒤집는 모습을 보여주는데...박완서에게는 소설이 그냥 이야기일 뿐이야. 글을 너무 잘쓰잖아. 난 박완서 문체를 좋아했어. 이문열이 글 잘 쓴다는 생각은 안해 봤거든. 이문열은 좀더 권력적인 글을 썼는데, 박완서는 그렇진 않았지. 여자여서 그럴 수 없었기도 하고. 하여간 90년대 이후 보여준 냉소적인 모습에서 많이 실망했어.

산책- 그럼 싱아나 말뚝, 나목 같은 데서 자기 경험담을 가지고 잘 썼다면 그 후 글들에 대해 크게 실망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사실 작가의 창의성 같은 거 많이 강조하긴 하는데... 뭐 자기 이야기 이후에 글을 쓸 수 있어야 진짜 작가라고 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건 상품을 계속 찍어내서 팔아야 한다는 말이지 않나 싶기도 해요. 한 사람이 자기 이야기 가지고 제대로 하나 쓰고 나면 할 일 다 한 거 아닐까요? 신경숙도 외딴방 하나 썼으면 됐지 그 후야 뭐(웃음) 황석영도 이제 그만 써도 되지 않을까?

앤님-글쎄, 뭐 하긴 나는 언젠가 이청준이 아직도 글쓰고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내가 잊고 있는 사이 그 사람이 계속 내고 있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는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게 되니...

산책- 참 박완서가 당시에 창비에도 글을 싣고 거기서 책도 내고 한 걸로 보면 문단 주류에서 활동이 보장된 거 같은데도, 평론가들이 외면했다는 건 왜죠? 조한혜정씨는 평론가들이 여성작가라서 외면당했다고 하던데...

앤님-박완서 소설은 감춰진 게 별로 없어서이지 않을까? 평론가들이 끄집어낼 게 별로 없었나 보지.

산책-그럼 페미니즘 비평이 나오면서 끄집어낼 걸 찾아낸 셈? (웃음)

앤님- 그런 셈이지. 예쩐에 잠깐은 여성주의적인 시각에서 볼 만한 작품 좀 있는 것 같던데, 그런 얘기도 또 지나쳐가는 듯하던데... 사실 시에 있어서 문정희하고 비슷한 거 아닌가. 

......음 기억에 한계가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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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다 읽었다.

박완서의 소설을 완독한 것은 처음이다. 군대에서 "그 많던 싱아는..."을 읽다가 군대 공간의 특수성상 다 읽지 못했다. 반 정도 읽었지만 그 작품은 호의적으로 기억한다. 박완서의 작품에 대해 김윤식이 '천의무봉'이라고 칭찬하는 글을 읽었던 듯하고, 조한혜정씨가 박완서를 평가하는 데에 평론가들이 인색하다고 질타하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런것들도 다 군대 가기 전과 후니 꽤 옛날 일이다. 이번에 겨우 한 권을 붙들고 읽었다.

읽고 보니 작년에 읽은 지상에 숟가락 하나 생각이 나기도 한다. 비교적 근래에 읽은 자전적인 느낌의 소설이어서 그런가 보다. 이 작품에 대해 뭐라고 말 하기가 조심스러워진다. 소설을 보는 내 눈을 우선 신뢰하지 못하고 있어서기도 하다. 뭔가 소설이 마뜩찮다.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하면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있지만 그게 이유가 되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해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하간 뭔가 어정쩡하다. 일단 내가 자서전을 읽은 게 아니라 소설을 읽었다는 점을 고려해야겠다.  고려하고서 생각해도 주인공의 캐릭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확실히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여서 마뜩치않은 걸까? 생각을 하기가 골치 아프다.

각각의 이야기들에는 별로 불만이 없는데도 전체적으로 마음에 차게 모아지지가 않는다. 생각을 좀 해 봐야겠다.

 

손쉽게 말하면 '나'의 계급계층이 마음에 안 들 수 있겠다. 보바리 부인과 채털리 부인과 자유부인들이 소설 속에서 등장하니 이 인물들과 '나'를 견주어 볼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채털리 부인을 중학교 때 읽었을 뿐이고 보바리 부인과 자유부인은 줄거리만 조금 알 뿐이어서 딱히 말하기는 그렇다.

이 책을 읽고 보면 '나'는 마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듯이 아주 디테일한 속내를 많이 드러내고 있지만 그 속내의 솔직해 보이는 발언들에 비해 실제로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기껏해야 친척 동생과 산책을 좀 했었다는 거다. 이게 플라토닉한 것인지 혹은 남성과는 다른 여성적인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계급적인 모습이나 사랑의 진행과정과 결과들을 놓고 보면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 작품은 무척 좋게 봤었는데 내가 외국걸 더 좋게 보는 사람이어서 그런가? 설마 감정교육은 남자 이야기고 그남자네집은 여자 이야기여서 다르게 느끼는 건 아니겠지...

 

19세기의 프랑스 소설들을 읽으면 남자들이 귀부인의 사랑을 얻어서 상류사회로 진출하려는 욕망의 축과, 그 귀부인들의 또다른 권력욕이 마주쳐서 기묘한 긴장관계를 얻었던 듯하다. 그 긴장감에 이끌려 들어서 정신없이 읽다 보면 당시 사회에 대해 작가가 생각하는 숨은 전모를 날카롭게 상기하게 되곤 했다. 

그남자네 집에서는 '나'는 나름대로 속내를 많이 까뒤집어 보여주는데도 그것이 이야기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는 듯하다. '나'가 그렇게 순진무구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의 의미는 기껏해야 그남자와 산책하며 막연한  쾌감을 느끼는 캐릭터를 납득시키는 데에 한정되어 있다. 그 외에는 이 소설은 그냥 전체적으로 보통의 유한부인이 보고 들은 이야기의 조야한 모자이크가 아닌가. 소설이라기보다는 조잡한 이야기 묶음인데 그다지 솔직하지도 않다.

참 중간에 광수가 주변사람들에게 개개다가 국가에 개개게 되었다는 발언은 상당히 위험한 것 아닌가 싶다. 그남자의 순결한 전쟁과 광수의 혐오스러운 전쟁을 대비시키는 의도가 '단순히' 그남자에 대해 갖고 싶은 '순결한 이미지'가 있다는 걸 얘기하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작품 속에서 그런 면을 해명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 놓지 않은 건 좀 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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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엔키노 폐간의 교훈

필요 때문에 '필름2.0' 사이트에 갔다가 읽게 된 뜻밖의 칼럼은 영화포털 사이트 '엔키노'의 폐간 소식을 전하고 있다. '필름2.0'의 온라인 편집장 '최광희의 직설화법'으로 그 교훈을 되새겨본다.

-국내 최대의 영화 포털을 자처해온 '엔키노(NKINO)'가 결국 문을 닫는다. 엔키노는 최근 경영난을 이유로 업데이트 중단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키노의 사실상의 폐간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일단 이 사이트가 앞서 3년 전에 폐간된 영화 전문 월간지 'KINO'와 혈족 관계였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각각 전혀 상반된 편집 방향을 선보여온 두 매체가 결국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KINO는 대중 매체를 표방한 영화 잡지임에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의 인문학적 교양이 뒷받침된 독해력을 요구할 정도로 다소 현학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었다. 말하자면 가방 끈 먹물들만을 위한 잡지라든가, 피차 이해 안되는 글을 쓰고 읽는 것을 생의 기쁨으로 삼는 지적 허영의 잡지라든가, 하는 비판들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의 매체가 존재해야 할 필요성은 있었을 것이다. 굳이 학술적 요구는 아니더라도 지적 호기심과 학구적 욕망을 지닌 관객층이 두텁게 상존한다는 전제가 뒷받침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한국의 잡지 시장에서 이렇게 난이도 높은 글을 읽기 위해 흔쾌히 지갑을 열 독자들이 KINO의 기대만큼 많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KINO가 폐간될 당시, 전국의 그 많은 영화과 학생들이라도 KINO를 사서 봤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인터넷과 이동통신 단말기, 국지적 무가지의 공습에 헤게모니를 빼앗긴 대한민국 아날로그 문화 시장의 지형도를 언급하는 건 둘째 문제로 치고, 아무튼 KINO는 매체의 재생산 구조를 보장할만한 시장을 만드는 데 실패했던 셈이다.

-KINO의 정반대 지점에서 영화를 비교적 쉽고 가벼운 느낌으로 소개하는데 주력했던 엔키노는 그 덕분에 꽤 많은 방문자들을 거느릴 수 있었다. 영화 사이트들끼리만 비교하면 방문자 순위는 거의 부동의 1위였다. 그러나 엔키노의 고민은 그 많은 방문자수가 즉각적인 수익 모델로 치환될 수 없다는 데 있었을 것이다. 사실상 모든 컨텐츠가 무료로 서비스되는 마당에 아무리 많은 방문자를 자랑한다 할지라도 전문 포털이 네이버, 다음 등의 검색 커뮤니티 포털을 이길 공산은 크지 않다.

-그래서 엔키노는 영화 매체의 정체성을 견고히 하는 전략 대신 수익 사업 다양화의 길을 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온라인 영화 마케팅에 뛰어 들어 개별 영화들의 온라인 광고 집행을 대행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엔키노는 급기야 국내 최대의 영화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에 인수되면서 겉으로는 경영 안정의 발판을 마련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즉각적인 수익이 나지 않으면 과감히 발을 빼는 대기업의 속성은 결국 엔키노의 수명을 줄이는데 일조한 셈이 됐다.

-엔키노 폐간의 표면적 이유는 물론 경영상의 판단일테지만, 뒤늦게나마 지적한다면, 나는 이 사이트가 수익성을 위해 스스로 저널로서의 정체성을 놓아 버린 것이 가장 큰 패착이었다고 생각한다. 엔키노는 판매와 기사가 공존하는 기이한 매체였다. 광고를 직접 팔면서 광고주의 영화에 대해 기사를 쓴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편집과 경영이 완전 분리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이것은 곧 견제와 비판이 설 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합리적인 견제와 비판은 저널리즘의 필요충분조건이며, 그것이 없을 때 독자들은 아주 민감하게 매체에 보낼 신뢰 수준을 하향 조절한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모기업인 CJ엔터테인먼트의 영화에 편집의 정성과 비중을 기울임으로써 스스로 저널의 균형성을 폐기 처분했다. 영화사 관계자들은 노골적으로 이 사이트를 CJ엔터테인먼트의 홍보 사이트라고 불렀다.

-엔키노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웹상에서 판매와 기사가 공존하는 기이한 매체들은 여럿 있다. 기사를 거의 완전히 광고화하는데 일조한 영화 입장권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가 대표적이다. 이 사이트는 영화 프로모션을 위해 작성된 글을 과감히 ‘기사’로 포장함으로써 컨텐츠의 신뢰도를 높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지만, 그것은 거꾸로 기사와 광고 카피의 차별성을 줄이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대관절 맥스무비에서 개별 영화에 대한 비상업적 비평을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하물며 예매 점유율 상위권 작품이라면 언감생심일 것이다. 맥스무비와, 홍보 자료를 베껴 쓰는 다른 많은 인터넷 언론들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이제 웹상에서 사실상의 모든 영화 기사는 광고와 동의어가 됐다.

 

 

 



-엔키노의 폐간은 온라인 영화 저널리즘의 방향성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는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저널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생존을 도모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비평의 독자성을 지키며 시장을 확보할 것인가. 그 실오라기 같은 공존의 가능성을 저버릴 수 없는 나는, 그래서 점점 더 비판의 도그마에 빠져 들어가게 되는지도 모른다. 칭송이 난무하는 사이버 세상의 공기가 탁하다.(*문학 저널리즘 또한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그 실오라기 같은 공존의 가능성'을 붙들기 위해 분투하면서. 이걸, 어떻게 잡지?)

06. 07.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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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작가와 편집자

--게다가 그녀는 겉으로 너무 씩씩해 보이는 게 문제였다.
1957년에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6개월이나 9개월"이면
작품이 완성된다더니 1966년 3월이 되어서야 탈고 소식을 알렸다.
그런데 배수관이 막혔다든지 부엌에 쥐가 생겼다든지 하는 등의 집안 문제로
집필이 늦어졌다고 하면서도 아주 재미있는 사건을 이야기하듯 전했다.
진을 직접 만난 뒤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그녀에게 그런 일들은 끔찍한 사고였다.
그녀는 정상인의 범주를 넘어설 만큼 일상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런 사고가 벌어지면 넋을 잃곤 했다.(132쪽)

--이처럼 무능력하고 불완전하게 보이는 여자가 어쩌면 그렇게 또렷하고 우아하고
힘이 넘치는 작품을 남길 수 있었는지에 얽힌 수수께끼는 지금도 해결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가 태어난 카리브해 동쪽의 섬나라 도미니카를 알게 된 이후,
진이 삶에 서툰 이유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 <그대로 두기>  다이애나 애실 著, 134쪽)



뻔한 말이지만 어떤 사람의 겉모습, 표정, 그 입에서 나오는 말 등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면 종종 낭패를 당한다. 
특히 작가들!
영국 안드레이 도이치 출판사에서 평생, 그러니까 70세를 넘길 때까지 일한
다이애나 애실의 여성 편집자로서의 자서전 <그대로 두기>를 재미있게 읽고 있다.
위에 소개한 주인공은 진 리스( Jean Rhys)라는 여성 소설가.

많은 작가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는 건 독자들로 봐서는 편집자의 특권에 속할 텐데
사실 그 편집자의 역할이라는 게 요즘은 어떤지 몰라도 예전엔 심하게 말해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을 때도 더러 있었다.

나는 출판사에 오래 근무하진 않았지만 직업의 특성상 작가들을 단기간
가까이에서 많이 만났다.

한때 절친하게 지낸 한 소설가는 오밤중에 자는 사람을 깨워 칠순의 어머니가
제습제를  설탕인 줄 알고 커피에 넣어 마셨는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나의 대답, "물을 많이 마시면 되지 않을까요?"

십몇 년 전 전화기에 부착하는 음성녹음기가 처음 나왔을 때
어떻게 해야 음성이 녹음되는지 집에 와서 좀 봐달라고 하여 퇴근후 달려간 적도 있다.
문제는 내가 글도 쓰지 않는 주제에 그 방면의 무능력자여서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것.

언젠가 스페인 여행 중 플라멩코를 추는 한 무희에게 반해 돌아와 싱숭생숭해 하더니
그녀를 만나기 위해 다시 스페인행 비행기표를 끊은 여성 작가도 있었다.
새로운 사람에게 무섭게 열중하고 가차없이 등을 돌리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다 보니
나중엔 그 열정이라는 것이 의심스러웠다.

동서양 사상과 철학, 명상과 선禪, 구도에 대한 책이 사방 벽을 덮은
어느 여성 시인의 서가를 보고 감탄했더니, 다음날 술집에서 취하여 사소한 다툼 끝에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하며 친구의  머리채를 잡고 뒹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작가들의 열정과 집착, 좋게 말해서 그렇고, 불성실하고 무능한 면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지긋지긋한 구석이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아예 종자(!)가 다른가?'  하는 의심을 품기도 했으니......

아무튼 그 시절에도 친구로 교류한 사람은 몇 안 되고 지금은 모두 연락이 끊어졌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속을 터놓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그 일을 했다면 명맥은 이어 나갔겠지.

내가 가까이에서 잠시 지켜본 혼자 알고 있기 아까운 문인들에 대한 일화를
언젠가 실명으로 글을 써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십거리밖에 안 될 바에야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책에서는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넘어서 영혼을 이해하려는 편집자 다이애나 애실의
균형감각과 노력과 자질이 돋보인다.
한수 배우는 느낌이랄까. 뒤늦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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