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엔키노 폐간의 교훈

필요 때문에 '필름2.0' 사이트에 갔다가 읽게 된 뜻밖의 칼럼은 영화포털 사이트 '엔키노'의 폐간 소식을 전하고 있다. '필름2.0'의 온라인 편집장 '최광희의 직설화법'으로 그 교훈을 되새겨본다.

-국내 최대의 영화 포털을 자처해온 '엔키노(NKINO)'가 결국 문을 닫는다. 엔키노는 최근 경영난을 이유로 업데이트 중단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키노의 사실상의 폐간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일단 이 사이트가 앞서 3년 전에 폐간된 영화 전문 월간지 'KINO'와 혈족 관계였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각각 전혀 상반된 편집 방향을 선보여온 두 매체가 결국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KINO는 대중 매체를 표방한 영화 잡지임에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의 인문학적 교양이 뒷받침된 독해력을 요구할 정도로 다소 현학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었다. 말하자면 가방 끈 먹물들만을 위한 잡지라든가, 피차 이해 안되는 글을 쓰고 읽는 것을 생의 기쁨으로 삼는 지적 허영의 잡지라든가, 하는 비판들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의 매체가 존재해야 할 필요성은 있었을 것이다. 굳이 학술적 요구는 아니더라도 지적 호기심과 학구적 욕망을 지닌 관객층이 두텁게 상존한다는 전제가 뒷받침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한국의 잡지 시장에서 이렇게 난이도 높은 글을 읽기 위해 흔쾌히 지갑을 열 독자들이 KINO의 기대만큼 많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KINO가 폐간될 당시, 전국의 그 많은 영화과 학생들이라도 KINO를 사서 봤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인터넷과 이동통신 단말기, 국지적 무가지의 공습에 헤게모니를 빼앗긴 대한민국 아날로그 문화 시장의 지형도를 언급하는 건 둘째 문제로 치고, 아무튼 KINO는 매체의 재생산 구조를 보장할만한 시장을 만드는 데 실패했던 셈이다.

-KINO의 정반대 지점에서 영화를 비교적 쉽고 가벼운 느낌으로 소개하는데 주력했던 엔키노는 그 덕분에 꽤 많은 방문자들을 거느릴 수 있었다. 영화 사이트들끼리만 비교하면 방문자 순위는 거의 부동의 1위였다. 그러나 엔키노의 고민은 그 많은 방문자수가 즉각적인 수익 모델로 치환될 수 없다는 데 있었을 것이다. 사실상 모든 컨텐츠가 무료로 서비스되는 마당에 아무리 많은 방문자를 자랑한다 할지라도 전문 포털이 네이버, 다음 등의 검색 커뮤니티 포털을 이길 공산은 크지 않다.

-그래서 엔키노는 영화 매체의 정체성을 견고히 하는 전략 대신 수익 사업 다양화의 길을 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온라인 영화 마케팅에 뛰어 들어 개별 영화들의 온라인 광고 집행을 대행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엔키노는 급기야 국내 최대의 영화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에 인수되면서 겉으로는 경영 안정의 발판을 마련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즉각적인 수익이 나지 않으면 과감히 발을 빼는 대기업의 속성은 결국 엔키노의 수명을 줄이는데 일조한 셈이 됐다.

-엔키노 폐간의 표면적 이유는 물론 경영상의 판단일테지만, 뒤늦게나마 지적한다면, 나는 이 사이트가 수익성을 위해 스스로 저널로서의 정체성을 놓아 버린 것이 가장 큰 패착이었다고 생각한다. 엔키노는 판매와 기사가 공존하는 기이한 매체였다. 광고를 직접 팔면서 광고주의 영화에 대해 기사를 쓴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편집과 경영이 완전 분리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이것은 곧 견제와 비판이 설 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합리적인 견제와 비판은 저널리즘의 필요충분조건이며, 그것이 없을 때 독자들은 아주 민감하게 매체에 보낼 신뢰 수준을 하향 조절한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모기업인 CJ엔터테인먼트의 영화에 편집의 정성과 비중을 기울임으로써 스스로 저널의 균형성을 폐기 처분했다. 영화사 관계자들은 노골적으로 이 사이트를 CJ엔터테인먼트의 홍보 사이트라고 불렀다.

-엔키노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웹상에서 판매와 기사가 공존하는 기이한 매체들은 여럿 있다. 기사를 거의 완전히 광고화하는데 일조한 영화 입장권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가 대표적이다. 이 사이트는 영화 프로모션을 위해 작성된 글을 과감히 ‘기사’로 포장함으로써 컨텐츠의 신뢰도를 높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지만, 그것은 거꾸로 기사와 광고 카피의 차별성을 줄이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대관절 맥스무비에서 개별 영화에 대한 비상업적 비평을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하물며 예매 점유율 상위권 작품이라면 언감생심일 것이다. 맥스무비와, 홍보 자료를 베껴 쓰는 다른 많은 인터넷 언론들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이제 웹상에서 사실상의 모든 영화 기사는 광고와 동의어가 됐다.

 

 

 



-엔키노의 폐간은 온라인 영화 저널리즘의 방향성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는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저널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생존을 도모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비평의 독자성을 지키며 시장을 확보할 것인가. 그 실오라기 같은 공존의 가능성을 저버릴 수 없는 나는, 그래서 점점 더 비판의 도그마에 빠져 들어가게 되는지도 모른다. 칭송이 난무하는 사이버 세상의 공기가 탁하다.(*문학 저널리즘 또한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그 실오라기 같은 공존의 가능성'을 붙들기 위해 분투하면서. 이걸, 어떻게 잡지?)

06. 07.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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