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박완서
사실 박완서를 별로 읽지 않았다는 것이 좀 부담스럽다.
원래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군대에서 그 많던 싱아...를 조금씩 보다가(마음에는 들었는데) 다 못본 걸 아직도 읽을 기회를 못 얻었다. 그 후로 그 남자네 집을 읽은 게 다인데, 이 소설은 별로였다. 생각나서 옛날에 끄적댄 거 밑에 달아놨다.
오늘 문득 밥먹다가 앤님이랑 박완서 얘기를 했는데, 기억해 두려고 써 본다.
산책-예전에 박완서의 대표작들을 좀 봐야지 했는데 계속 못 보네요. 엄마의 말뚝이나 나목을 안 보고서야 좀 그렇겠죠?
앤님-그렇지 정말 좋은 소설이지.
산책- 근데 지난번에 그남자네는 너무 별로여서 또 좀 그래요. 참 거북헌 게 박완서는 소설에서 "미군은 적어도 강간은 안하니까" 하고 언급을 하던데 이해가 안돼요. 우리 어머니 얘길 들어도 마을에 방아간 집 아들이 미군 총에 맞아 죽었다던데요. 부인을 강간하려는 거 말린다고.... 사실 방아간집 아들이면 그 시절 동네 유진데도 그랬다는 건 한국 민심에 개의치 않았다는 거잖아요. 또 강준만의 한국현대사산책에 보니 그 무렵에 미군의 강간 문제가 굉장히 유명했드만요. 동아일보 같은 데서 대서특필 됐었다는데 박완서는 소설에서 그렇게 단호하게 언명하다니 이해가 안 돼요.
앤님-자긴 안 당했나 보지 뭐(웃음) 박완서가 좀 그런 데는 있어. 내가 80년대에 박완서 소설을 넘 좋아해서 거의 다 읽었어. 선배들이 태백산맥 읽는데 난 박완서 읽는다고 욕도 많이 먹었지. 난 그래도 사람들이 왜 박완서를 이해 못하나 하고 안타까워했는데, 나중에는 엄청 뜨더라. 박완서 소설은 당시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게 있었어. 뭔가 역할모델이기도 했고. 한국현대사를 개인사적으로 겪으며 헤쳐나왔잖아. 그걸 겪으며 생각한 것들도 만만찮게 있고...
산책-그많던 싱아는 좋았어요 다 읽진 않았지만.
앤님-사실 그게 다야. 거기 박완서인생이 다 들어있고 다른 소설들은 거기서 가지쳐나오지. 엄마의 말뚝은 엄마 얘기, 나목은 오빠 얘기...뭐 그런 거.사실 박완서 글들은 굉장히 선민의식에 싸여 있어. 엄마가 박은 말뚝이 사실은 선민의식이지. 넌 다르게 살아라고 하는데... 박완서에 끌리는 부분도 그런 거와 관련 있는 듯해. 특히 여자들이 80년대 어름에 그렇게 살고 싶었던 거고. 진보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자기가 좀 앞서 나간다는 선민의식이 있었고, 어쩌면 강박관념일 수도 있고. 90년대 이후에 박완서가 변했네 하는 말도 있지만 난 아닌 것 같아. 박완서는 원래 그랬던 거지. 예전에는 안 드러나 있던 게 이제 보인 거고, 또 그때는 좀 감추고 있었을 수도 있고. 그러니 박완서가 조선이랑 얽혀드는 게 자연스럽지.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차이도 모르겠다잖아. 조선일보기자와 친해서 거절할 수 없다잖아. 친하면 더한 것도 하겠다는 거지. 안 친해서 문제지.
사실 박완서를 워낙 좋아했어서 별로 비판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박완서가 소설에서 앞으로 계속 나가기를 바랐는데, 그러지 않더라. 앞 작품에서 좀 전진했다가 뒷작품에서는 뒤집는 모습을 보여주는데...박완서에게는 소설이 그냥 이야기일 뿐이야. 글을 너무 잘쓰잖아. 난 박완서 문체를 좋아했어. 이문열이 글 잘 쓴다는 생각은 안해 봤거든. 이문열은 좀더 권력적인 글을 썼는데, 박완서는 그렇진 않았지. 여자여서 그럴 수 없었기도 하고. 하여간 90년대 이후 보여준 냉소적인 모습에서 많이 실망했어.
산책- 그럼 싱아나 말뚝, 나목 같은 데서 자기 경험담을 가지고 잘 썼다면 그 후 글들에 대해 크게 실망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사실 작가의 창의성 같은 거 많이 강조하긴 하는데... 뭐 자기 이야기 이후에 글을 쓸 수 있어야 진짜 작가라고 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건 상품을 계속 찍어내서 팔아야 한다는 말이지 않나 싶기도 해요. 한 사람이 자기 이야기 가지고 제대로 하나 쓰고 나면 할 일 다 한 거 아닐까요? 신경숙도 외딴방 하나 썼으면 됐지 그 후야 뭐(웃음) 황석영도 이제 그만 써도 되지 않을까?
앤님-글쎄, 뭐 하긴 나는 언젠가 이청준이 아직도 글쓰고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내가 잊고 있는 사이 그 사람이 계속 내고 있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는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게 되니...
산책- 참 박완서가 당시에 창비에도 글을 싣고 거기서 책도 내고 한 걸로 보면 문단 주류에서 활동이 보장된 거 같은데도, 평론가들이 외면했다는 건 왜죠? 조한혜정씨는 평론가들이 여성작가라서 외면당했다고 하던데...
앤님-박완서 소설은 감춰진 게 별로 없어서이지 않을까? 평론가들이 끄집어낼 게 별로 없었나 보지.
산책-그럼 페미니즘 비평이 나오면서 끄집어낼 걸 찾아낸 셈? (웃음)
앤님- 그런 셈이지. 예쩐에 잠깐은 여성주의적인 시각에서 볼 만한 작품 좀 있는 것 같던데, 그런 얘기도 또 지나쳐가는 듯하던데... 사실 시에 있어서 문정희하고 비슷한 거 아닌가.
......음 기억에 한계가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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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다 읽었다.
박완서의 소설을 완독한 것은 처음이다. 군대에서 "그 많던 싱아는..."을 읽다가 군대 공간의 특수성상 다 읽지 못했다. 반 정도 읽었지만 그 작품은 호의적으로 기억한다. 박완서의 작품에 대해 김윤식이 '천의무봉'이라고 칭찬하는 글을 읽었던 듯하고, 조한혜정씨가 박완서를 평가하는 데에 평론가들이 인색하다고 질타하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런것들도 다 군대 가기 전과 후니 꽤 옛날 일이다. 이번에 겨우 한 권을 붙들고 읽었다.
읽고 보니 작년에 읽은 지상에 숟가락 하나 생각이 나기도 한다. 비교적 근래에 읽은 자전적인 느낌의 소설이어서 그런가 보다. 이 작품에 대해 뭐라고 말 하기가 조심스러워진다. 소설을 보는 내 눈을 우선 신뢰하지 못하고 있어서기도 하다. 뭔가 소설이 마뜩찮다.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하면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있지만 그게 이유가 되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해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하간 뭔가 어정쩡하다. 일단 내가 자서전을 읽은 게 아니라 소설을 읽었다는 점을 고려해야겠다. 고려하고서 생각해도 주인공의 캐릭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확실히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여서 마뜩치않은 걸까? 생각을 하기가 골치 아프다.
각각의 이야기들에는 별로 불만이 없는데도 전체적으로 마음에 차게 모아지지가 않는다. 생각을 좀 해 봐야겠다.
손쉽게 말하면 '나'의 계급계층이 마음에 안 들 수 있겠다. 보바리 부인과 채털리 부인과 자유부인들이 소설 속에서 등장하니 이 인물들과 '나'를 견주어 볼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채털리 부인을 중학교 때 읽었을 뿐이고 보바리 부인과 자유부인은 줄거리만 조금 알 뿐이어서 딱히 말하기는 그렇다.
이 책을 읽고 보면 '나'는 마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듯이 아주 디테일한 속내를 많이 드러내고 있지만 그 속내의 솔직해 보이는 발언들에 비해 실제로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기껏해야 친척 동생과 산책을 좀 했었다는 거다. 이게 플라토닉한 것인지 혹은 남성과는 다른 여성적인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계급적인 모습이나 사랑의 진행과정과 결과들을 놓고 보면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 작품은 무척 좋게 봤었는데 내가 외국걸 더 좋게 보는 사람이어서 그런가? 설마 감정교육은 남자 이야기고 그남자네집은 여자 이야기여서 다르게 느끼는 건 아니겠지...
19세기의 프랑스 소설들을 읽으면 남자들이 귀부인의 사랑을 얻어서 상류사회로 진출하려는 욕망의 축과, 그 귀부인들의 또다른 권력욕이 마주쳐서 기묘한 긴장관계를 얻었던 듯하다. 그 긴장감에 이끌려 들어서 정신없이 읽다 보면 당시 사회에 대해 작가가 생각하는 숨은 전모를 날카롭게 상기하게 되곤 했다.
그남자네 집에서는 '나'는 나름대로 속내를 많이 까뒤집어 보여주는데도 그것이 이야기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는 듯하다. '나'가 그렇게 순진무구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의 의미는 기껏해야 그남자와 산책하며 막연한 쾌감을 느끼는 캐릭터를 납득시키는 데에 한정되어 있다. 그 외에는 이 소설은 그냥 전체적으로 보통의 유한부인이 보고 들은 이야기의 조야한 모자이크가 아닌가. 소설이라기보다는 조잡한 이야기 묶음인데 그다지 솔직하지도 않다.
참 중간에 광수가 주변사람들에게 개개다가 국가에 개개게 되었다는 발언은 상당히 위험한 것 아닌가 싶다. 그남자의 순결한 전쟁과 광수의 혐오스러운 전쟁을 대비시키는 의도가 '단순히' 그남자에 대해 갖고 싶은 '순결한 이미지'가 있다는 걸 얘기하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작품 속에서 그런 면을 해명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 놓지 않은 건 좀 황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