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이스트우드가 새로 쓴 역사

얼마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2006년 최고의 영화 10편을 꼽으면서 1위에 올려놓은 작품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이다. 이 노익장 감독은 지난해 태평양전쟁을 소재로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각각 10월과 12월에 미국과 일본에서 개봉되었다고 하고, 이스트우드는 평단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골든글로브 및 아카데미의 유력한 작품상/감독상 후보로 점쳐지고 있단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해마다 문제작들을 쏟아내는 그의 열정이 경이롭다. 여하튼 올해 가장 주목해볼 만한 영화들 중의 두 편이 이스트우드의 작품일 거라는 예상은 해볼 수 있겠다(더불어, 영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의 과제목록이 하나 더 늘겠다. '이스트우드가 새로 쓴 역사'라고).  

Letters from Iwo Jima

중앙일보(07. 01. 09) 이스트우드가 새로 쓴 역사

할리우드의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77) 감독은 "역사는 승자와 패자 양쪽의 눈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통설을 단호히 거부한 그의 손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가 다시 쓰여졌다. 2차 대전 최대의 격전으로 꼽히는 이오지마(硫黃島) 전투를 미군과 일본군의 시각에서 각각 조명한 영화 '아버지의 깃발'(미.일 지난해 10월 개봉)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미.일 지난해 12월 개봉)를 통해서다.

이에 따라 이스트우드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15일 시상하는 제64회 골든글로브상에서 유력한 감독상 후보로 꼽히고 있다. 후보 자리는 모두 다섯인데, 그는 두 영화로 각각 감독상 후보에 올라 혼자서 두 자리를 차지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일본에선 특히 '이오지마…'가 평론가와 관객 모두에게서 호평을 받으며 연말연시 흥행 1위를 기록했다.

두 영화는 공통적으로 전투에 참가한 병사들의 인간적 고민에 초점을 맞춘다. 1945년 2월 19일 미군의 상륙으로 시작된 이오지마 전투는 한 달가량 이어졌다. 양쪽 모두에서 2만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하루하루 죽음과 맞서 싸워야 했던 병사들의 고뇌도 깊었다.



'아버지…'은 고지에 대형 성조기를 세우는 미군 병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의 진실성을 추적한다. 영화에 따르면 사진은 연출됐을 뿐 아니라 사진 속 병사 중 한 명은 언론에 알려진 것과 다른 인물이다. 깃발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개였다. 그렇지만 미국 정부는 세 명의 병사를 영웅으로 미화한 뒤 전쟁국채 발행을 위한 홍보요원으로 적극 활용한다. 이들은 "우릴 영웅으로 만드는 건 사기다. 진정한 영웅은 전장에서 죽어간 전우들"이라고 항의하지만 묵살된다.



'이오지마…'의 주인공은 섬 수비대 사령관 구리바야시(와타나베 겐) 중장과 말단 병사 사이고(니노미야 가즈나리)다. 원치 않는 전쟁에 조국의 이름으로 불려온 이들은 수시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편지를 띄운다. 따라서 영화는 전쟁을 미화하거나 전사자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아버지…'은 다음달 15일 국내 개봉 예정이며, '이오지마…'는 아직 개봉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주정완 기자)

◆이오지마(硫黃島)=일본 도쿄에서 남쪽으로 약 1100㎞ 떨어진 태평양의 작은 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일본 본토를 향해 폭격기를 띄우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미군은 이오지마 비행장을 확보한 1945년 3월부터 도쿄 대공습을 감행해 확실한 승기를 잡게 된다.(*아주 오래전이지만 나는 가장 처절했다는 이 전투를 담은 영화 <유황도>를 본 적이 있다. 이스트우드가 쓴 '다른 역사'가 기대된다.)

마이데일리(07. 01. 08) 클린트 이스트우드, 오스카 전초전 美NBR 작품상

클린트 이스트우드(76)가 감독한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Iwo Jima)가 전미비평가위원회(National Board Of Review) 선정 최우수작품상에 선정됐다. 7일(현지시간) 영화전문잡비 버라이어티, 헐리우드닷컴 등은 이 영화가 비평가위원회 선정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으로 결정됐다고 보도했다. 비평가위원회 수상결과는 아카데미시상식, 골든글로브 등에 많은 영향을 보여와 오스카 전초전으로 불린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지난 2005년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휩쓸었다. 비평가위원회 감독상은 ‘디파티드’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선정됐고 남자배우상은 ‘라스트 킹 오브 스코틀랜드’의 포레스트 휘태커, 여자배우상은 ‘더 퀸’의 헬렌 메린이 뽑혔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일본의 최대 격전지였던 태평양의 이오지마(유황도) 전투를 그린 영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지난해 이 영화와 똑같이 이오지마 전투를 영화로 제작한 ‘우리 아버지의 깃발’을 감독했고 연이어 ‘아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선보였다. ‘우리 아버지의 깃발’은 미국 군인 입장에서 이오지마를 그렸고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일본군의 시각에서 바라본 전투를 필름에 담았다.

Letters from Iwo Jima

‘우리 아버지의 깃발’은 라이언 필립, 제시 브래포드 등이 출연했으며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라스트 사무라이’로 잘 알려진 와타나베 켄이 주연을 맡아 일본어로 촬영됐다.



이오지마 전투는 6명의 미국 해병대 대원이 섬 정상에 성조기를 뽑는(*꽂는?) AP보도 사진으로 유명하며 ‘우리 아버지의 깃발’은 이 사진을 모티브로한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이오지마 전투는 미군 2만 4800명이 사상자를 냈고 일본군은 2만명 이상이 전사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이경호 기자) 

07. 0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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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오즈 야스지로의 세계

북데일리에 실린 북리뷰 하나를 스크랩해놓는다. 일본의 저명한 비평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감독 오스지로>(한나래, 2001)에 관한 것이다. 진작부터 갖고 있던 책이지만 아직 읽지는 않았는데, 그건 내가 오즈의 영화들을 아직 보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영화를 즐겨 볼 무렵에는 쉽게 구하기 어려웠고, 요즘처럼 DVD타이틀이 거의 다 출시돼 있기 때문에 약간의 성의와 시간만 투자한다면 얼마든지 볼 수 있게 된 시점에서는 여유 시간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도 마침 지난주 용산 부근에 갔다가 <동경이야기>의 DVD를 구한 김에 이번 겨울이 가기 전에 몇 작품을 관람해볼 생각이다. 이 기사를 챙겨두는 건 그런 연유에서이다.  

북데일리(07. 01. 09) 위대한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매력

일본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두 분류로 나뉜다. 오즈 야스지로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말장난 같지만 특이하게도 오즈는 사후에 일본 영화계에서 절대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오즈 영화가 한국 디비디 시장에 범람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회자되고 신인 감독들 중 대다수가 오즈의 팬이라며 자처하고 나선다. 빔 벤더스나 허우샤오시엔, 압바스키아로스타미는 그에게 헌사 하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정성일 영화 평론가는 오즈를 거론할 때 “위대한”이란 형용사를 붙인다. 무엇이 그렇게 위대하고 대단한 것일까? 모두가 보는 영화이지만 하지만 누구도 정확하게 말하지 못했던 영화가 바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동경 대학교 총장이자 영화 및 문학 비평가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정성일 영화 평론가가 자처하여 세르쥬 다네, 김현씨와 함께 스승으로 칭하는 하스미 시게히코는 구로사와 기요시, 슈오 마사유키, 아오야마 신지같은 동시대의 걸출한 감독들을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 <감독 오즈 야시즈로>(한나래, 2001)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들을 비평하는 책이다. 비평에 앞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좋은 영화평론의 귀결은 그 영화와 감독에 대한 연애편지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책 <감독 오즈 야시즈로>는 좋은 글쓰기의 표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오즈를 열렬히 예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오즈의 영화를 보았거나 혹은 오즈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책의 매혹에 빠질 것이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오즈를 둘러싼 신화를 해체하면서 시작하고 그 해체를 부정에서 다시 긍정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한다. 첫 번째로 오즈를 예찬하는 언사들이 모두 부정적인 것으로 이루어졌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오즈의 영화에는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는다, 낮은 위치의 카메라는 위치도 변하지 않는다. 이동 촬영이 거의 없다. 부감은 예외적 경우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오즈 영화를 칭송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이 사실은 거의 다 부정적인 언사로 이루어져있거나 결여를 지칭하는 언사로 지칭되어 있다. 이런 언사들인 오즈를 더욱더 세밀하게 바라보기를 가로 막는 장치였으며 벽으로 작용하였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그런 것을 모두 삭제하고 부정적 언사가 아니라 긍정의 언사로 다가간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들 이외의 점을 지적하고 그 불가시함의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오즈의 영화는 부정적 언사들과 함께 단조롭다거나 혹은 “가족주의”드라마로 화자되어왔다. 그래서 그 단조로움 안에서 모든 영화들이 비슷하다고 했지만, 하스미 시게히코는 현존하지 않는 오즈의 작품들을 시나리오 속에서 재발견하거나 서구 비평가들에게 무시되어왔던 오즈의 초기 무성영화와 필름 느와르 속에서 견고하게 굳어져 있는 오즈적 일관성을 탈피한다. 그리고 영화 역사서에 줄곧 등장하는 그런 비평과 평가들을 일부 부정하거나 혹은 긍정하지만 그 비밀을 말하지 않았던 것을 설명한다.

가장 놀라운 것은 하스미 시게히코는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으로 영화를 해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오즈의 영화에서 인물들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말하거나 혹은 먹는 것을 말한다. 또는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오즈의 영화에서 딸이 시집을 갈 때 갈아입었던 옷의 비밀, 혹은 남성들이 갈아입었던 옷의 의미와 먹는 것을 통하여 내부와 외부를 연결짓는 오즈의 내러티브 연결법을 설명하면서 그렇게 내부와 외부를 차단 된 것이 아닌 열린 공간으로 나아가게 했던 오즈의 위대함을 역설한다. 또한 누구도 계산하거나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 중에 하나가 오즈의 딸들이 거의 비슷한 연령대에 머물러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오즈의 영화가 세트로 촬영되었다는 것에서 출발하여 집안 구조의 단일성과 그 단일성이 대부분의 작품에서 반복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세트 구조를 해체하기 시작한다. 이 세트 구조의 해체는 곧 오즈의 카메라와 시선이 머무르는 곳을 알려주며 그 시선이 부딪치는 내부의 차단성에 대해서 우리가 공공연히 감동을 받는다고 말한다. 특히나 1층과 2층을 연결해주는 계단은 영화상에는 존재하지만 세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불가시의 영역이다. (오즈의 영화에서 계단은 대부분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붕 떠버린 2층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을 설명하고 그 1층과 2층의 공간에서 구분되는 성역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책은 후반부에 도달해서 오즈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궁금해 하던 비밀을 풀기 시작한다. 왜 오즈의 영화에서는 환기작용을 하듯이 종종 이유 없는 하늘과 공장의 굴뚝 혹은 빨래가 등장할까? 그 설명의 시작에서 하스미 시게히코는 인물들이 모두 이동할 때 나란히 서있다는 것과(이것은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장면으로 항상 걸어갈 때 인물들은 나란히 걷게 되는 특징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시선의 등방향성이다. 외부로 나아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시선으로 옮겨간다. 지하철역에서나 거리에서나 집단적으로 서 있을 때 사람들은 한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고 한쪽으로 시선을 옮기게 된다. 다가오는 오즈의 가상선의 파괴는 오즈가 어떻게 영화적 규칙을 파괴하고 있는지를 영화적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결국 영화라는 매체가 동시에 두 가지 시선을 담을 수 없다는 한계를 오즈가 알고 있었기에 구도-역구도를 이용하여 그 시선을 한 대상이 보는 것처럼 조작한다. 이것은 마치 보고는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을 조장할 수도 있다. 트뤼포는 오즈의 이런 법칙들을 보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오즈의 영화에서는 한 사람을 이쪽 카메라에서 찍었다라고 생각하면 다음에 상대를 반대편으로 되받아쳐 찍는 듯 한 인상을 받습니다. 이것은 인상이 아니라 그렇게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연출로, 보는 쪽으로서는 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면 사실 거기에는 상대가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에 휩싸여 버립니다. 카메라가 되받아 칠 때마다 이미 대화 상대가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하스미 시게히코는 여기에 덧붙인다. “오즈의 시선은 전혀 배려가 없는 것이고, 그래서 이런 눈동자에 둘러싸여 사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한 그런 것을 오즈 자신도 충분히 의식하였을 것이다.” 오즈는 그 자신이 “영화에는 문법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처럼 가상의 선을 파괴하고 영화적 문법을 해체하여 시선을 통한 불안감을 주고 기묘한 공간 감각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풀어야 될 난제가 도달한다. 즉 그 비어있는 공간과 사물을 쇼트가 느닷없이 담는 이유는 무엇인가? 구도-역구도 쇼트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두 명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이는 쇼트가 바로 그 비어버린 쇼트 혹은 이유 없는 정물들이다. 앞에서 그 실험적 쇼트들은 서로 다른 시선을 만들어 공간을 해체한다. 서로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거나 혹은 누군가 한명은 공간에서 이탈해있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그 정물에서 오즈는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던 사람들 혹은 전쟁 전-후세대 할 것 없이 모든 장벽을 허물고 잠시나마 그 쇼트를 바라보게 한다는 것이다. “오즈적 ‘작품’이 선동하는 영화적 감성이 높아지는 것은 보다 추상적인 동시에 보다 직접적인, 즉 누구나 틀림없이 눈에 간직하지만 쉽게 서정과는 타협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놓치기 쉬운 이미지의 힘에서 오는 것이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단조로운 영화라고 칭해지던 오즈의 평가에서 더 깊게 들어가서 오즈의 일상적인 것들이 어떤 수수께끼를 가지고 있는지 명쾌하게 풀어준다. 그렇지만 그는 못내 아쉬운 마음을 털어놓는다. 어쩌면 오즈 생전에 이런 평가들이 있었다면 그의 초기 영화들이 유실되지 않고 우리가 지금처럼 극장에서 그의 필름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는 오즈가 만들어낸 영화가 전 세계를 울릴 수 있다고 자부하며 오즈의 마음은 동시대적이면서 전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좋은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으며 더 궁극적으로는 영화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책 읽기를 통해서 경험하게 해준다.(이도훈 시민기자) 

07. 0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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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 > 체 게바라는 독서중...
체 게바라 자서전
체 게바라 지음, 박지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체 게바라 평전을 읽던 중에 우연히 체 게바라 자서전을 곁들여 읽게 되었다.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의 삶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자서전을 썼을 리 없는 체의 삶을 돌아보게 해 준 책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자서전이란 제목은 좀 상업적 냄새가 짙다.

이 책에서 체의 사진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그의 인격의 향기와 은은한 시가 냄새가 뭍어 나는 편지들, 일화들도 재미있다.

목격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체 게바라. 그는 시인으로서, 사진가로서도 당당한 한 사람 몫을 해 낼 정도의 예술적 열정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어느 나라의 고통도 내 것으로 느끼며, 세계 어느 곳, 어떤 나라의 고통도 마찬가지로 느낀다던 낙관적 혁명가 체.

적당한 자기 중심주의는 노골적이고 줏대없는 개인주의임을 당당하게 어머니 앞에서 밝히던 그 밝은 얼굴은 미제국주의자들의 표적이 되어 사라졌지만, IMF의 본질은 <외부의 자본>이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것을 통제하도록 하는 기능이 그것이라는 선지자적 시각을 읽을 때, 그의 해박한 관점에 새삼 놀라게 한다.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 혁명을 이끌었던 50년 전의 사람. 그의 책읽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스캐너로 읽었다. 나무 위에서, 나뭇짐에 앉아서, 전투중에도 피곤함을 이기고 괴테를 읽는 그의 모습은 담배를 물고 미간을 조금 찡그린 사진만큼이나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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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장정일의 공부타령, 나는 이렇게 봤다.
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장정일의 <공부>는 독특한 부제를 달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기억하고 있기에, 이것은 좀 당황스럽다. 독서일기와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는 뜻일까? 장정일이 책 이야기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롭지만, 부제의 의미가 더욱 흥미롭게 보인다. 이것이 마케팅이라면 확실히 성공한 셈이다.

1. 장정일, 공부를 하자고 말을 걸다
그렇다면 내용은 어떨까? 인문학 부활을 위한 뭔가를 담아낸 것인가? 먼저 제목부터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책의 제목은 단도직입적으로 ‘공부’다. 대중이 공부하고픈 열망을 품도록 해보겠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아! 뜬금없이 웬 공부인가 싶겠지만, 이것은 흘려들을 것이 아니다. 한국인은 유독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그것은 대학입시나 취업을 위한 경우가 많다. 공부를 했다고 말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다. 물론 그 다음에는 그런 것도 안하지만.

공부를 하는 방법의 대표적인 것으로 독서를 생각해보자. 작년, 한국인은 인문학 관련 도서를 얼마나 읽었던가? 인문학이 아니라 소설 등의 장르까지 생각해봐도 그 수치는 현저히 낮다. 대중은 취업이나 입학을 위한 학습 이외에 공부를 하는 경우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여기서 지식인들의 처세를 떠올려본다. 지식인들은 인문학을 등원시하는 대중의 행동을 바꿔야 할 책무가 있다. 하지만 지식인들이 그렇게 했던가? 강유원의 말을 빌리자면, 잘 나가는 지식인, 특히 매스미디어의 조명을 받는 지식인들은 자본주의의 앞잡이가 되었다. 그들은 공부를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요약해줬으면 그것을 자본과 맞바꾸었다.

생각해보면 대중이 아는 유명한 지식인들은, 공부를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돈벌이로 그것을 이용했을 따름이다. 평생 학생임을 강조하며, 다른 이들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주며 공부하라고 말했던 왕멍과 같은 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기에 장정일이 ‘공부’를 하자고 말하는 것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공부하자는 말이, ‘소귀에 경 읽기’가 될 것이 뻔함에도 이런 말을 하는 그의 소신은 그것만으로도 후한 평가를 받을 일이다. 아! 오히려 이 책이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섣부른 기대까지 해본다. 장정일이라는 유명 소설가가 발 벗고 나선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진보정당, 레드 콤플렉스, 이스라엘, 미국 등의 주제를 갖고 공부해보자는 말을, 다수의 팬을 거느린 장정일이 한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래서 일게다. ‘공부합시다!’라는 말이, 그것을 위해 책을 읽자는 말이 반갑게 다가오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2. 욕심이 지나친 게 아닐까?
책의 중간, 장정일의 욕심을 본다. 장정일은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를 말하면서, 많은 것을 짚어주고, 또한 대중이 그것에 관심을 갖도록 촉구하고 싶었을 게다. 이 책이 촉진제가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다양한 주제들을 한권에서 말하려다보니, 즉 과도한 욕심을 부린 탓에 각 주제들을 너무 피상적으로 말하고 있다.

<공부>의 구성은 대개 장정일이 읽은 책을 소개하고, 그에 따라 감상을 이야기한다. 물론 읽은 책들은 그 자체로 거대한 주제를 담고 있다. 그렇기에 감상 또한 자연스럽게 진보정당이나 유태인 문제 등의 거대한 것으로 흐르게 된다. 그런데 이 감상이 소개하는 책의 줄거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유감스럽게도 <공부>는 책 요약본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아! 적어도 인문학을 부활시키겠다면, 주제를 과감하게 한정시키고,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모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모습은 자칫하면 본래 의도와 달리, 또 하나의 논술교재로 전락하지 모를 일이기에 처음의 반가움과 달리 볼수록 노파심이 든다. 공부를 하도록 만들어주는 ‘길라잡이’의 역할을 자처한 것은 좋지만, 일정한 흐름이 없는 주제들로 글을 구성한 것은 아쉬움이 크다.

3. 이 책은 누가 읽어야 하는 걸까?
장정일의 <공부>는 누가 읽어야 하는 걸까? 뜬금없이 이것을 묻는 것은 다루는 책 등이 유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장정일이 말하는 것들은, 그 분야의 유명한 것들이 많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장정일의 감상 대부분이 소개하는 책들에게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무슨 뜻인가? 이미 그 책을 ‘공부’했던 사람이라면, <공부>에서 말하는 것들은 ‘뒷북’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기존에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읽어봤을 정도로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큰 만족감을 얻기는 어려울 게다.

반면에 이 책이 길라잡이를 자처하는 만큼, 인문학을 처음 접해보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게다. 또한 공부하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테다. 그런 경우라면, 이 책은 정말 공부할 것이 무엇인지를 대략적으로나마 짚어주고 있으니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 논술을 위한 교재로 취급받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길 정도니 오죽하랴.

이것이 장정일이 원하는 것이라면,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인문학 부활을 위해 소위 팬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의 기존 독자들 대신 대중을 위해 글을 썼으니 대단하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설사 그것이 아니더라도, 과감하게 무지했다고 고백하며 함께 공부하자는 말을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군다나 지식인들마저 돈 벌이를 이야기하는 때에, 이러한 태도는 환영해야 할 일이다. 몇 가지 아쉬움에 박수를 힘차게 칠 수는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손은 움직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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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걱정인형과 곰인형




1. 걱정인형

걱정이 있는 날, 베개 속에 넣고 자면 그 걱정이 해결된다는
손가락만한 과테말라의 걱정인형.
앤터니 브라운의 그림동화 <겁쟁이 빌리>에도 나오더니
이은의 만화 <분녀네 선물가게>를 읽는데 나온다.
걱정인형만 있으면 걱정 끝이라니,  자투리 천 가지고 만들어볼까라는 생각이 슬며시.
예쁘고 반듯한 인형이 아니니 얼렁뚱땅 어떻게 가능할 것도 같은데.......


 

2. 위시 윙 베어

어제 오후 야단 칠 일이 있어 딸아이를 혼내키는데
야단 맞을 짓을 한 주제에 서럽다는 듯이 울음소리가 점점 커진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최근 선물 받아 애지중지하는 대형 곰인형을 가리키며,

"나는 울고 있는데 쟤는 웃고 있어!"

그 말과 표정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나도 모르게 꼬옥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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