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카호의 천진난만한 물음이 떠올랐다. 결혼을막연히 동경했던 그 아이에게 지금이라면 말할 수 있다.
가정을 갖는 것이 여자의 인생 전부는 아니란다.
잔을 내려놓고 카호는 뒤로 기지개를 켰다.
결정했다. 내일부터 진지하게 맨션을 찾자.
조건은 오로지 내가 편안한 집, 그것만 보고 고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집에서 혼자 즐기기 위한 술을 담그자.
달지만은 않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맛있어지는 게 있다는것을 지금의 카호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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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행복하니까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더라면, 그 사람과 있는 것을 선택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한다고 했어요. 그분 얘기를 할 때 사쿠라 씨는 슬퍼 보이지않았어요. 하지만 전 언젠가 사쿠라 씨가 그분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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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나는 허리 굽히,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채 해결 안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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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라들처럼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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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부스러기가 섞인 그 한 모금의 차가 입천장에 닿는 순간나는 나의 내면에서 범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소스라쳐 놀랐다. 어떤 감미로운 쾌감이 나를 사로잡았던것이다. 원인 불명의 고립된 쾌감이었다. 그 쾌감으로 인하여 나는 곧 인생의 부침(浮沈) 같은 것은 별것 아니고 갖가지 재난도무해한 것이며 그 덧없음은 착각일 뿐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마치 사랑의 힘이 작용하여 그렇게 하듯이 그 쾌감이 나를 어떤 귀중한 본질로 가득 채웠던 것이다. 아니 그 본질이 내 속에 있는것이 아니라 그 본질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스스로가 보잘것없고 우연적인, 결국은 죽어 없어질 존재라고는 느끼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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