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인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합니다. 수많은 경험을 쌓고 시련에 맞서 승리하면서 성장합니다. 인간이 한 번 태어나서 죽고 존재가 사라진다면성장의 전체 과정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가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시점은 현재뿐이며, 육신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사라지면 존재의 의미니 잠재력의 표현이니 하는 것들도 모두 무용지물이 됩니다.
인류는 계속 성장하지만, 인간은 죽는다는 얘기가 됩니다. 현대과학의 격언 중 하나입니다. "인류는 풍요로움을 향해 계속 발전하지만, 인간은 태어날 때처럼가난한 상태로 죽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의 존재를 인식하면 삶을 더 풍성하게 살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은 이 사실을 알았다. 이들은 축제가 한창일 때 해골을 날라 와서 손님들에게 자기 운명을 상기시켰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도 이 사실을 알았다. 시인 호라티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새로 시작되는 매일매일이 너의 마지막 날이라고 확신하라. 그 뜻밖의 시간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몽테뉴는 죽음을 동경하지 않았다. 삶을 동경했다. 하지만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이러한 삶에 대한 동경을 온전히 실현할 수 없음을 잘 알았다. 우리는 삶과 죽음이 순차적으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먼저 살고, 그다음 죽는다. 하지만 몽테뉴는 사실 "죽음이 우리 삶 속에 평생 녹아들어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아파서 죽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몽테뉴는 내가 가능할 거라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죽음을 생각한다. 그는 죽음에 대해 숙고할 뿐만 아니라 죽음을 가지고 놀고심지어 (이상하게 들릴 거라는 거 안다) 죽음의 친구가 된다. "죽음이내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함께했으면 좋겠다. 죽음은 내 삶의 커다랗고 중요한 일부다."
이해하기 힘들다. 커다랗고 중요한 일부는 고사하고, 나는 애초에 죽음이 내 삶의 일부이길 원치 않는 것 같다. 궁금해진다. 어떻게 안전한 거리에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죽음을 받아들일 수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토아철학은 미래의 고난을 상상하는 것은 미래의 고난에 대해 걱정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걱정은 모호하고 애매한것이다. 하지만 고난을 예상하는 것은 구체적인 행위이며, 더 구체적일수록 좋다. ‘나는 재정난을 겪는 모습을 상상한다‘ 보다, 집과차, 그동안 모은 가방 전부를 잃고 다시 어머니 집에서 살게 되는 모습을 상상한다‘가 더 좋다. 에픽테토스는 큰 도움이 되는 또다른 제안을 한다. 네가 말하고, 듣고, 걷고, 숨쉬고, 삼키는 능력을 잃었다고 상상해보라.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함으로써 우리는 미래의 고난이 가진영향력을 빼앗고 지금 가진 것에 더욱 감사할 수 있다. 예상한 대로 대재앙이 닥쳤을 때 스토아주의자들은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열리거나 조타수가 맞바람을 만날 때처럼 태연하다고, 에픽테토스는 말한다. 예상된 고난은 힘을 잃는다. 구체적으로 표현된두려움은 그 크기가 줄어든다. 최소한 스토아철학은 그렇다고 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소는 중요하다. 장소는 생각의 보고다. 그래서 내가 여행을하는 것이며, 그래서 지금 에피쿠로스와 그의 정원의 흔적을 찾아 아테네에 와 있는 것이다. 쉽진 않을 것이다. 온갖 도구와 지식을 가진 고고학자들도 아직 정원의 정확한 위치를 짚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내 철학적 열정은 꺾이지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찾고있는지 알아야만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임기응변할 수 있는 재치가 가장 훌륭한 안내자다.
PIA몇번 길을 잘못 들어선 끝에 내가 찾던 첫 번째 랜드마크를 발견한다. 디필론Dipylon, 또는 더블 게이트라는 이름의 문이다. 아테네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던 더블 게이트는 고대에 세워진 가장 거대한 문이었다. 수 세기가 흐른 지금 이 문은 낮은 돌담이 되었다.
제이컵 니들먼과 일라이어스가 함께 앉아 질문을 경험하던 돌담이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