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문학 비평에 비유하는 것은 불완전할 수도 있다. 문학 비평가에게는 음악가가 연주하는 것처럼 자신이 선택한 인용구를 변형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렌델의 장황한 중얼거림을 텍스트의 외면에만 머무르는 문학 비평의 한 형태, 즉 텍스트를 통과하는-글쓰기가 아니라 텍스트에-대한-글쓰기, 창조의 핵심에서 추방된 평면적인 논평을 대표하는 것으로 생각해보자.
그리고 브렌델의 피아노 연주, 즉 창조 없이는 인용하지 못하는 그의 무능력을 텍스트를 통과하는 글쓰기, 비평인 동시에 재서술인 비평을 대표하는 것으로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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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스가 전에 이곳에서 일했던 집사 엘던 씨도잭 부인과 그녀의 연인이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을목격한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이디스의 독보적인경험을 무시하려고 하자, 이디스는 격한 분노까지터트리며 반박한다. "엘던 씨가 언제 그 방에 몇 시에 올라갔는지 증명할 수 있어요? 나와 같은 그 시간에 갔을까요? 부인이 엘던 씨에게도 침대에 똑바로 앉아서 한 쌍의 거위처럼 전면부를 흔들어 보였다고요? 나한테 했던 것처럼요? 참으로 아름다운격분이 아닐 수 없다. 이 탁월하다 못해 거의 셰익스피어적인 신조어 ‘전면부fronts‘ 라든가 가슴이 한쌍의 거위처럼 흔들린다는 표현은 한번 들으면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네브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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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에는 우리의 심장을 파고드는 결정적인 문장 두 개가 있다. "그 사건을 이야기하는 데그토록 짧은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날의 입맞춤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밤을 새도 모자랄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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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세요. 이제 당신을 위해 내가 피아노를 연주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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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렸다는 사실처럼 그 사회에 저항한 예술가들에게 행하는 잔인한 복수가 없는 것처럼 나에게는 인식된 것이다. 저항하는 예술가에게 복수하는 길은 그들을 인정하고 그들의 능력을 기구화시켜버리는 길이다. 나는 그때투철하게 미셸 푸코가 프랑스의 부르주아지들처럼 영리한 계층은 없다고 말한 발언의 배후를 읽어낼 수가 있었다. 자코메티를 정말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조각이전시되어 있는 미술관에를 가지 않아야 되는 것이 아닌가. 현대미술관을 나오면서 나는 속으로 그렇게 자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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