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관찰함에 있어 어느 한쪽으로 편들 수밖에 없으므로, 나는 하늘과 바다를 편든다. 바위 위의 성, 나는 그것을 ‘미세화화(微細畵化)‘ 한다. 광대한 수평선 앞에서 그것을 아주 조그만 것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나는 그 성을 소유하려는 유혹, 들판을 지배하고 세계를 덮어 누르려는 유혹을 정신분석적으로 치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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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돌과 유리의 드라마는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이미지는 언제나 변용하는 것이다. 내부의 사원이 술병에 스쳐서 상처를 입힌다. 그것은 술병을 가상의 발판으로 한정한다. 술병은 사원 지하실의 기초가 된다. 폭풍이 몰아친다 해도 꼼짝하지않을 것이다. 플로콩이 바다 앞에 놓은 술병이 폭풍에 의해 쓰러지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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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코르티 작품의 아름다움은 진실로 이와 같은 깊은 물질적 의지에서 생겨난 것이다. 잉크의시인의 꿈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 흑색, 스스로의 어둠으로부터 나온 흑색이 우리에게 그 광휘를 내맡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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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선지자들을 그리며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얼굴의 독자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 무슨 의무이겠는가. 그렇지만 샤갈의 선지자들은 하나의 공통된 특색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누구나 샤갈적이다. 그들은 창조의 각인이 찍혀 있는 것이다. 이미지의 철학자에게, 이 책의 페이지 하나하나는 창조적 상상력의 활동을 연구할수 있는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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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키쿠오의 몸이 춤을 추고 있습니까? 그런 건가요?"
츠루와카의 비아냥을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우메키 앞에서 키쿠오는 혼자, 마치 철판 위의 등심처럼 진땀을 흘립니다.
그런 키쿠오를 곁눈질로 보며 피식 웃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닭새우의 껍질을 벗기는 츠루노스케 역시, 정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몸이 춤을 추고 있다‘라는 발언은 바로 어제, 공연중간에 무대 뒤에서 츠루와카가 키쿠오를 호되게 혼내면서 나왔기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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