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마라. 남들에게 들은 말도 무작정믿지 마라. 냉소적으로 굴라는 말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스승의 가르침이라도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진리가 살아 있음을스스로 탐구하라는 뜻이다. 내 집에서 일어나는 무상과 무아, 고통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알아차려라. 사람들이 말하는 진리가 참인지 거짓인지 스스로 확인하라. 인간의식의 근원에 자리한 것이 환희인지도 스스로 알아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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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만한 가운데서도 산만하지 않고, 정신적인 고요함 속에서도 침착하지 않고, 어리석음 속에서도 어리석지 않은, 그러한 축복받은 사람은 지혜롭지만 현명하지도 않다.

●이러한 진리를 깨달은 위대한 영혼은 일원성에도 이원성에도 매여 있지 않다. 그는 어떠한 경우라도 좋다. 일원성도 좋고 이원성도 좋다. 산만하면서도 산만하지 않다. 왜그럴까? 이런 사람은 이미 모든 것을 초월해 있다. 이 사람은 이미 일원성도 초월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어리석지만 어리석지 않고 지혜롭지만 현명하지도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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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에 도달했고 아주 정직한 성실성을 구현한 성자에게는방종한 행동이나 미덕 그리고 심지어는 진리에 대한 분별도 없다.

●최고의 진리를 성취한 진실한 성자는 이 세상의 이원성에 구속을 받지 않는다. 성자가 깨달은 일원성의 세계에는선과 악, 있음과 없음 등과 같은 이원성이 없다. 오직 순수 의식만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진리의 세계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빔의 세계이지만 그속에 절대자가 충만해 있다. 그 외는 어떤 사물도 개념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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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는 마음을 일으키는 뿌리는 무지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명상을 하는 까닭도 이 무지함을 녹여내기 위해서다. 우리가 마음챙김을 하지 못하고, 자제하지도 못하며, 전체적으로 균형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것은 혼란이 아니라 우리가 명료해지는 출발점에 선 것이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귀가 먹고, 눈이흐려지며, 말을 못 하면서 점차 자기 능력을 상실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 초조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유로워진다. 내가 불완전하다고 해서 불안해 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 머무를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해방‘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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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불편함을 나쁜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진리를찾아 나선 구도자나 마음공부를 하는 수행자들은 다르다. 실망,
부끄러움, 짜증, 서운함, 분노, 두려움 같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들 때, 우리 의식의 왜곡된 지점을 명확하게 알아차리는 좋은 기회로 여긴다.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왔을 때 도망치거나 움츠러드는충동을 이기고,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진실을 향해 더욱 힘껏다가가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 집착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우리에게 가장 완벽한 스승이라고 운 좋게도 그 스승은 언제 어디서나 늘 우리와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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