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열었다. 밤을 새운 눈에 아침 해가 따끔따끔 눈부시게 스며들었다. 그러나 캠퍼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서늘하여 기분이 좋았다.
코하루는 술병 바닥에 남은 봄의 연주를 잔에 부었다.
아침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봄의 연주를 꿀꺽 마셨다.
쓴맛과 알코올의 무게에 무의식적으로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봄의 연주는 어젯밤보다 훨씬 가볍게 코하루 속으로 들어갔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나니 아침 공기 너머로 황금빛 들판이 보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두 살 카호의 천진난만한 물음이 떠올랐다. 결혼을막연히 동경했던 그 아이에게 지금이라면 말할 수 있다.
가정을 갖는 것이 여자의 인생 전부는 아니란다.
잔을 내려놓고 카호는 뒤로 기지개를 켰다.
결정했다. 내일부터 진지하게 맨션을 찾자.
조건은 오로지 내가 편안한 집, 그것만 보고 고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집에서 혼자 즐기기 위한 술을 담그자.
달지만은 않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맛있어지는 게 있다는것을 지금의 카호는 알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도 행복하니까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더라면, 그 사람과 있는 것을 선택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한다고 했어요. 그분 얘기를 할 때 사쿠라 씨는 슬퍼 보이지않았어요. 하지만 전 언젠가 사쿠라 씨가 그분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나는 허리 굽히,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채 해결 안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라들처럼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