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달 모양 모자 차양꾹 눌러쓴 할머니 한 분담에 뒷머리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세상 좋은 공기 혼자 다 잡숫고 있었다.앞에 놓인 잡곡들 다 뿌려진드넓은 들판을 바라보고 있었다.입 벌린 채 깊은 잠들어 있었다.세 그루 칸나 꽃이세상에 나오기 바로며칠 전의 일이었다.
처녀의 발등 같은 흰 물결 위에살아서 깊어지는 노래 한 구절 보탤 수 있으리오래 고통을 잠재우던 이불 소리와아플 것 다 아파 본 사람들의 마음 불러 모아고로쇠 숲에서 우는 청호반새의 노래를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말로 번역할 수 있으리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우리가 저와 같아서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일이 끝나 저물어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나는 돌아갈 뿐이다.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샛강 바닥 썩은 물에달이 뜨는구나우리가 저와 같아서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글을 쓰며 하류라 여겨지는 삶의 방식에 대한 명예회복과 그에 따른 소외를 고발하는 일 사이에서 좁다란길을 본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우리의 것이었고 심지어행복하기도 했으며, 우리가 살던 환경의 수치스러운 장벽들(‘우리 집은 잘살지 못한다‘는 인식)이기도 했으니까. 행복이자 동시에 소외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아니 그보다도 이 모순 사이에서 흔들리는 느낌이다.
아이들의 몸에는 언제나 기생충이 있었다. 기생충을없애기 위해 셔츠 안쪽, 배꼽 근처에 마늘을 넣은 작은 주머니를 꿰매줬다. 겨울에는 귀마개로 솜을 썼다. 프루스트나 모리아크를 읽으면, 그들이 내 아버지가 어릴 때, 그때 그 시대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들과비교하면 아버지가 살던 시절은 중세 시대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