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달 모양 모자 차양꾹 눌러쓴 할머니 한 분담에 뒷머리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세상 좋은 공기 혼자 다 잡숫고 있었다.
앞에 놓인 잡곡들 다 뿌려진드넓은 들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 벌린 채 깊은 잠들어 있었다.
세 그루 칸나 꽃이세상에 나오기 바로며칠 전의 일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녀의 발등 같은 흰 물결 위에살아서 깊어지는 노래 한 구절 보탤 수 있으리오래 고통을 잠재우던 이불 소리와아플 것 다 아파 본 사람들의 마음 불러 모아고로쇠 숲에서 우는 청호반새의 노래를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말로 번역할 수 있으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을 쓰며 하류라 여겨지는 삶의 방식에 대한 명예회복과 그에 따른 소외를 고발하는 일 사이에서 좁다란길을 본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우리의 것이었고 심지어행복하기도 했으며, 우리가 살던 환경의 수치스러운 장벽들(‘우리 집은 잘살지 못한다‘는 인식)이기도 했으니까. 행복이자 동시에 소외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이 모순 사이에서 흔들리는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들의 몸에는 언제나 기생충이 있었다. 기생충을없애기 위해 셔츠 안쪽, 배꼽 근처에 마늘을 넣은 작은 주머니를 꿰매줬다. 겨울에는 귀마개로 솜을 썼다. 프루스트나 모리아크를 읽으면, 그들이 내 아버지가 어릴 때, 그때 그 시대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들과비교하면 아버지가 살던 시절은 중세 시대나 다름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