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제는 참 많이 사랑을 하고 살았다. 자신을 버려둔 채 연락이끊긴 부모님도, 길에서 건강 팔찌를 파는 할머니도, 나도, 제제에게는 모두 공평한 사랑의 대상이었다. 덕분에 제제는 양 손목에옥으로 만든 팔찌를 주렁주렁 차고 있으며, 다단계에 빠진 미용실아줌마에게 영양제 다섯 통을 사와 밥 대신 먹기도 했다. 평생을한동네에서 살았지만 말을 트고 지내는 사람이 없는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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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 (혹은 일상을 살아갈 때) 홀로 먼지 속을 헤매고 있는 것처럼 막막한 기분이 들 때가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손에 뭔가 닿은 것처럼 온기가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감히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말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금 주먹을 꽉 쥔 채 이 사소한 온기를 껴안을 수밖에 없다. 내 삶을,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단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오롯이 나로서 이 삶을 살아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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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 별명 짓기.
카일리 미노그를 듣다 꼬여버린 인생이라 카일리라고지은 건 아니고, 그냥 이름이 예뻐서. 어차피 이것이랑 죽을 때까지 함께해야 할 판인데 나 듣기에 제일 예쁜 이름을 붙여주는 게 낫겠다 싶어서, 카일리.
맞아. 마돈나나 아리아나, 브리트니나 비욘세보단 카일리지. 아무렴.
그 이름을 후회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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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예상처럼, 차트의 숫자처럼 차곡차곡 정리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가장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핏줄이 연결된 것처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존재가, 실은 커다란 미지의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인생의 어떤 시점에는 포기해야 하는 때가 온다는 것을, 그러니 지금 내가 할수 있는 것은 모든 생각을 멈추고, 고작 지고 뜨는 태양따위에 의미를 부여하며 미소 짓는 그녀를 그저 바라보는일, 그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일, 그녀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버리기를 바라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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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방에서 그를 안고 누웠다.
하루 종일 모자를 쓰고 있어 잔뜩 눌린 머리카락과 빳빳하게 굳은 목과 다른 곳보다 온도가 낮은 등의 문신 자국을 만졌다. 그도 나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우리는 작은빈틈도 없이 서로를 꽉 안은 채로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비로소 나의 몸이며 가슴의 형태, 팔의 길이 같은 것이 그와 맞아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고, 내 가슴에 닿아 있는 그의 따뜻한 머리통이, 이마가 마치 우주를 안고 있는 것처럼 거대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피부로 느껴지는 그의 체온과 귓가에 울리는 호흡에 집중하다보니 어느새 나는 나 자신을 잊어버렸다.
나는 내가 아닌 존재로, 아무것도 아닌 채로 순식간에 그라는 세상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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