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 중 겨우 절반 넘을 정도가 우리 태양처럼 홀로 존재한다,
그리고 3분의 1은 쌍성계로, 10퍼센트 정도는 세 개 혹은 그 이상의다중계로 존재한다." 쌍성계 대부분은 멀리 떨어진 궤도를 돌아 주기가 1년, 10년 혹은 심지어 몇 세기가 걸리기도 한다. 따라서 그들은 상호작용하지 않고 서로의 진화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쌍성전체에서 5퍼센트 이하로 낮은 비율만이 몇 시간에서 몇 주 사이의 궤도주기를 갖는다.

극한 환경에서 어떻게 성단의 별들이 형성되고 살아남았는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나선은하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안드로메다은하의 동반 왜소은하인 M32 역시 블랙홀을가지고 있는데, 우리은하의 블랙홀보다 살짝 규모가 작다. 1광년 미만의 좁은 영역에 태양의 340만 배 질량이 들어차 있다. 크기 규모에서 다른 쪽을 보면, 전파원인 처녀자리 A가 있다. 이제는 거대타원은하 M87로 알려진 천체다. M87 중심의 블랙홀은 태양의 64억 배에 해당하는 진정한 괴물이다."

퀘이사가 그렇게 훌륭한 우주탐사의 도구라는 것은 예상하지못했던 보너스였다. 우주는 10개의 별을 수천억 개의 은하에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도 퀘이사는 은하들 사이에 더 많은 물질이 있으며 심지어 다른 방법으로 검출할 수 없는, 암흑의 질량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모든 별과 모든 은하는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고작 2퍼센트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최근의 시뮬레이션들이 설명을 내놓았다. 빅뱅 이후 첫 수억년 안에 일어난 첫 은하 형성의 파도 속에서, 배경의 복사는 처음엔별들이 형성되는 것을 막았다. 별이 만들어진 경우 그 형성은 급격하고 폭발적으로 이루어져 여러 작은 블랙홀을 남겼다. 그리고 고밀도의 환경에서 이 작은 블랙홀들이 병합해 태양질량 10~10°배의블랙홀 씨앗들을 만들었다." 블랙홀 형성을 이런 식으로 활성화하는 것은 이후 5억 년 안에 초대질량블랙홀(태양질량의 10억 배 혹은 그이상) 수준으로의 성장을 가능케 했다.

모든 질량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빛을 휘게 한다. 따라서 렌즈는 천문학자들이 은하나 은하단, 은하들 사이 공간에 있는 암흑물질지도를 만드는 데 쓰는 최고의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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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상에 붙은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있다고 상상하자.
당신은 자신의 일반적인 무게를 느끼고, 무엇을 떨어뜨리든 제곱초당 9.8미터로 가속된다. 중력이 존재하는 흔한 상황이다. 이제 당신이 우주에서 (마치 엘리베이터 안처럼) 상자 안에서 갇혀 있고, 우주선에 의해 제곱초당 9.8미터로 가속된다고 상상해보라. 앞의 경우에는중력이 관여하고 뒤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어떤 실험으로도 두 가지 경우를 구분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두 가지 상황이 더 있다. 우선 당신이 심우주의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있는 경우다. 당신은 무중력 상태로 엘리베이터 안을 떠다닌다. 두 번째로, 높은 건물에 있는 엘리베이터의 케이블이 끊어져통로 바닥으로 수직 낙하하고 있는 경우다. 이 두 가지 경우를 구분할 방법 또한 없다. 중력은 다른 힘과 구별되지 않는다. 이런 ‘등가원리‘가 아인슈타인 일반상대성이론의 핵심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은 간결하고 아름답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의 창조에 대해 "이 이론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그 마법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은 없습니다." 호킹은 빅뱅 이전 상태가 여러 우주를 낳았을지도모른다는, 그래서 블랙홀이 서로 다른 우주 사이의 정보 흐름을 가능하게 한다는 우주론의 아이디어 하나를 넌지시 언급한 것이다. 내기 결과에 승복하면서 호킹은 친구 프레스킬에게 "정보는 쉽게 복원될 수 없다"며 야구 백과사전을 주었다(앞의 백과사전 비유 참고). 그리고 정보 손실에 관한 자신의 초기 주장이 "가장 큰 실수"였다고 밝혔다.1

별의 잔해는 진정 괴상한 물질 상태다. 우리가 그것을 실험실에서만들어낼 방법은 없다. 물리학 법칙을 사용해 우리 이론이 연구를이어나가기에 충분히 견고하다고 희망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전부다. 20세기 천체물리학 최고의 지성들은 별의 잔해를 이해하는데 사로잡혔다.

모든 별은 죽기 전에 질량을 잃는다. 이미 언급했듯, 태양은 백색왜성으로 종말을 맞이하기 전자기 질량의 절반을 잃을 것이다.
자기 생애를 태양질량의 여덟 배 이내에서 시작하는 모든 별은 최대태양질량의 1.4배에 이르는 백색왜성을 남긴다. 만약 별의 초기 질량이 대략 태양질량의 8~25배라면, 중심핵의 붕괴는 양성자와 전자가 온전한 중성자 물질로 합쳐질 때까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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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얘기를 써야 합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세계, 속속들이 치부를 알고 있는 징글징글한 세계, 잘못 썼다가 호되게 질책을 받을까봐 무서운 세계, 밤이나 낮이나 내 머리를 점령하고 있는 골치 아픈 세계. 그런 세계에 대해 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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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균열이 오는 것은, 높은 확률로,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구체적인 예시를 접할 때다. 우리는 발화자의 가치관이 가득 담긴 직설적인 ‘말’보다는 그 말을 한 사람의 표정과눈빛, 제스처, 실제 행한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 발화자가 하는 말의 내용보다, 그가 걸어온 인생 행로를 눈여겨본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며 살아온 부모가 자식에게 ‘사람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라고 하면 자식이 마음속으로 코웃음을치는 이유다. 동양 격언에 언행일치를 강조하는 수많은 격언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입으로는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 중요한 건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이다.

소설을 읽지 말라는 이들은 궁금할 것이다. 대체 그 쓸데없는 걸 왜 읽는단 말인가? 이런 물음에 소설을 읽는 이들은 간단히 응수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싶어서우리는 저마다 자기 몸 안에 갇혀 있기에 다른 사람이 될 수없다. 하지만 잘 쓰인 소설을 읽으면,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경험에 매우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소설을 읽지 않았으면알지 못했을 타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소설을 통해 체험한 타인의 인생은 알 수 없고 두려운 내 인생 행로에환한 가로등 불빛이 되어준다.

그러나 시종일관 설명만으로 일관하면 독자에게 가독성도, 재미도 주지 못하고, 감정이입도 유발하지 못하리란사실을 알기에, 소설가는 가급적 보여주기를 많이 하려고노력한다. ‘고전‘으로 회자되며 몇백 년 동안 끈덕지게 읽히는 소설들에 유독 몇 장씩 이어지는 공간 묘사나 기후 묘사,
인물의 외양 묘사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공간과 기후와인물의 외양을 구체적으로 그려 보여줄수록, 소설가가 내세운 장소와 기후와 인물이 ‘진짜‘처럼 체감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사람‘에 관심을 갖고 해오던 다양한 상상들이어느 순간 화면으로 옮겨졌고, 그것이 내가 쓴 첫 소설이 되었다. 평소 해오던 수많은 상상 속 이야기들 중 하나가 언어라는 형체를 입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소설가들은 대부분 ‘남의 얘기‘에 관심이 많다. 자신과특별하게 연결되지 않은 사람의 사연에도 지대하게 관심을갖고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 ‘오지랖이 넓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카페에서 옆 테이블에 앉은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기울이거나, 친구의 먼 친척에 관한 이야기에도 흥미를 보인다. 수많은 타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언제나 민감한귀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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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릿 소설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나는 기자에게 되물었다.
칙릿 소설이 뭘 말하는 건가요?"
숨소리가 두어 번 들려온 뒤, 젊은 여성이 쓴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젊은 남성이 쓴 젊은 남성들에 대한 이야기는 뭐라고 부르나요?"

사회가 민주화되었기 때문이다. 한 명의 영웅이탄생하기 위해서는 그가 비인간적으로 대했던 아랫사람들,
함부로 대했던 여성들의 이름이 지워져야 하는데, 이제 이세상에는 그렇게 ‘지워버려도 되는‘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야 인류는 한 명의 영웅을 세우기 위해 많은 이들의 존재를 지워버리기보다 살아 숨 쉬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지키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런 시대에 베스트셀러 순위에 에세이가 자주 오르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제 독자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이야기를 보고 싶어한다. 이런 독자에게 공감받는 에세이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있는그대로‘ 쓰면 된다. 진솔하게, 구체적으로, 내 앞에 펼쳐진삶을 쓰면 된다. 내가 부여받은 하루하루에 내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진솔하게, 구체적으로, 써내려가면 된다. 솔직함과 디테일, 이 두 가지가 핵심이다.

근거를 대야 한다는 당위 없이 초고를 썼더랬다. 논픽션의 대가인 스승을 만나 근거를 보강해야 함을 배운다는것은 원고를 총체적으로 다시 쓰는 것을 의미했다. 가건물처럼 올린 엉성한 초고의 뼈대를 하나씩 빼낸 뒤 새로운 뼈대를 놓았다. ‘근거‘라는 탄탄한 콘크리트로 감싸인 뼈대를.
주석도 부지런히 달았다. 익숙지 않은 과정이었다. 세 줄짜주석을 달기 위해 한 권의 책 전체를 읽다보면 어느 세월에 이 원고를 완성할까 싶어 불안해졌다. 이런 식으로 근거를 대는 게 논리적 정합성이 있는가? 하는 의심도 가슴 한구석에서 부글거렸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면 궁금해진다. 이 사람에게 ‘앎’은 어떤 경로를 통해 오는가? 이들은 누군가가 건넨직설적인 한마디 말에서 뭔가를 퍼뜩 깨닫는가? 인생의 변화를 일으킬 만한 동력을 전달받는가? 습득한 정보를 곧바로 활용해 제 인생을 비옥하게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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