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에 대한 건축가적 정의가 아니다. 생활인으로서 인생관으로서자기류로서, 창의 정의를 음미 · 천명했다. 가장 평범한 대상에 학적.
술어를 끌어 이론하는데, 탈속·청기(淸奇)한 풍미가 있다. 수필의 좋은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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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는 문장 공부가 된다. ‘오늘은 여러 날 만에 날이 들어 내기분이 다 청쾌해졌다‘ 한마디를 쓰더라도, 이것은 우선 생각을 정리해 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생각이 되는 대로 얼른얼른 문장화하는습관이 생기면 ‘글을 쓴다’는 데 새삼스럽거나 겁이 나거나 하지 않는다. 더구나 일기는 남에게 보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쓰는 데 자유스럽고 자연스러울 수 있다. 글 쓰는 것이 어렵다는 압박을 받지 않고 글 쓰는 공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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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花)와 홍련(紅蓮)의 계모 되는 허씨의 묘사다. 이런 인물이실제로 있었다 하더라도 자연스러움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중에서도 가장 특징될 만한 것만 한두 가지 지적하는 데 그쳐야 할 것이다.
『춘향전』에, 이도령이 춘향의 집에 갔을 때, 과일을 내오는 장면 같은 데도 보면, 그 계절에 있고 없고, 그 지방에 나든 안 나든 생각해볼 새 없이 천하의 과일 이름은 모조리 주워섬기는데, 그런 과장 역시 과거 수사법이 끼친 중대한 폐해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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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더‘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야기는 애당초 재미로 가득해야 한다. 다만 이와 같은 필력으로 ‘더‘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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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되겠다는 그 결심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돌아본다. 최선을 다해 나아가지는 않으면서 셀프로 쓰지못할 이유, 쓸 수 없는 핑계를 끌어다 붙이고 있지는 않은지말이다.
우리가 되고 싶은 것은 비련의 작가 코스프레가 아니다.
비련의 주인공을 담아내는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다. 이미알지만 어려운 그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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