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날 일은 전부 일어나기로 되어 있다. 심지어 우리가 그토록리 뽑고자 하는 질병이나 부패 같은 문제조차도 신의 계획에 들어 있다. 이 역설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미국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는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지성이란 바로 이런 역설, 즉 모순되는 두 개념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이 완벽한 우주에서는 모든 것에 희망이 없기 때문에 희망을 품는 일이 너무나 당연하다. 굶주리는 사람이 있기에 그들을 돕는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다. 이런 역설이야말로 우리가 도달해야 할 가장 높은 곳이라는 피츠제럴드의 말에 공감하는 건 우리 역시역설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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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종종 내게 묻는다.
"죽으면 어디로 간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잠이 들었을 때 어디로 가세요?"
잠들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까? 육체라고 불리는 차원을 떠나형상이 없는 차원으로 들어간다. 잠자는 내내 순수하게 생각에만 빠져 있으며 그래도 다 괜찮다. 잠에 빠지는 걸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어나면서 "휴! 이 꿈속에 계속 머무르게 될까 봐너무 무서웠어!" 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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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만큼 보인다》Youill See It When You Believe li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나는 이 책 제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보이는 것만 믿으면 제한된정보만 얻는다. 하지만 믿는 만큼 보인다는 걸 이해하면 모든 생명체 너머의 우주에 특별한 지식이 있음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이 보는 것 이상을 볼 때 갑자기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람임을 알게 된다. 겉모습이나 육체적 감각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것 이상의 사람임을 깨닫는다. 자신이 훨씬 크고 위대하며 엄청난 존재라는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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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인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합니다. 수많은 경험을 쌓고 시련에 맞서 승리하면서 성장합니다. 인간이 한 번 태어나서 죽고 존재가 사라진다면성장의 전체 과정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가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시점은 현재뿐이며, 육신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사라지면 존재의 의미니 잠재력의 표현이니 하는 것들도 모두 무용지물이 됩니다.
인류는 계속 성장하지만, 인간은 죽는다는 얘기가 됩니다. 현대과학의 격언 중 하나입니다. "인류는 풍요로움을 향해 계속 발전하지만, 인간은 태어날 때처럼가난한 상태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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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존재를 인식하면 삶을 더 풍성하게 살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은 이 사실을 알았다. 이들은 축제가 한창일 때 해골을 날라 와서 손님들에게 자기 운명을 상기시켰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도 이 사실을 알았다. 시인 호라티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새로 시작되는 매일매일이 너의 마지막 날이라고 확신하라. 그 뜻밖의 시간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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