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차적으로는 슬픔과 한의 가죽일 수도 있는 나귀 가죽*에 관한 발자크의 소설을 조금 더 읽어보면 라파엘,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그저 "젊은이 아무개"라 불렸던 그가 층층계단을 올라 골동품 가게에 들어서는 장면을 이내 마주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치명적인 부적을 손에 넣게 된다. 발자크는 열두 쪽에 걸쳐 탑처럼 층층이 쌓인 골동품 더미를 묘사하면서 현실의 광기와 어휘 광증을 거리낌 없이 그야말로 작가적 재능을 낭비하는 방식으로 선보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상상력 넘치는 꿈의 깊이를 통찰할 가능성도 열어준다.
일종의 세계의 상자로 고안된 그 환상적인 가게, 바싹 마르고 백 살도 더 먹은 난쟁이가 주인장으로 앉아 있는 그 가게에서, 라파엘은 지질학자 퀴비에의 저술을 진정으로 시적인 작품이라는 말과 함께 추천받는다. 더 읽어나가다보면 라파엘을 창고 회랑으로 이끄는 어느 조수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신은 그 가죽의 영으로 인해 공중 높이 떴다가 과거의 무한한 골짜기 속으로 미끄러져서 몽마르트의 채석장과 우랄산맥의 편암층 속으로 한층 한층 깊이 들어가저 대홍수 이전에 살았던 동물들의 화석을 발견할 겁니다.
그러면 당신의 영혼은 인간의 허약한 기억력을 망각해버린 십억 년의 세월과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