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花)와 홍련(紅蓮)의 계모 되는 허씨의 묘사다. 이런 인물이실제로 있었다 하더라도 자연스러움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중에서도 가장 특징될 만한 것만 한두 가지 지적하는 데 그쳐야 할 것이다.
『춘향전』에, 이도령이 춘향의 집에 갔을 때, 과일을 내오는 장면 같은 데도 보면, 그 계절에 있고 없고, 그 지방에 나든 안 나든 생각해볼 새 없이 천하의 과일 이름은 모조리 주워섬기는데, 그런 과장 역시 과거 수사법이 끼친 중대한 폐해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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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더‘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야기는 애당초 재미로 가득해야 한다. 다만 이와 같은 필력으로 ‘더‘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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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되겠다는 그 결심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돌아본다. 최선을 다해 나아가지는 않으면서 셀프로 쓰지못할 이유, 쓸 수 없는 핑계를 끌어다 붙이고 있지는 않은지말이다.
우리가 되고 싶은 것은 비련의 작가 코스프레가 아니다.
비련의 주인공을 담아내는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다. 이미알지만 어려운 그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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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문제다. 주인공이 잘나면 안 된다는 말은 수요자나름의 ‘잘났다‘라는 기준에 준하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은자신이 욕망하는 그것으로부터 열등해야 한다는 말이다(‘아주‘ 열등해야 한다고는 쓰지 않았다. 중요한 지점이라 체크!). 욕망하는 대상과 주인공의 현재 상태 사이의 간극이 핵심이다.
욕망하는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주인공의 상황이야말로 욕망을 향해 달려갈 험지가 충분히 확보된 상태라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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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챘겠지만 작가는 참으로 후진 직업이다. (지금이라도 책 보기를 멈추라는 말이다. 안 늦었다.) 그 영감이라는 것을만나기 위해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삐딱하게 봐야 한다.
세상 행복하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만, 이야기를 꺼내놓고 싶다면 평안을 몽땅 지불해 내 주머니에서 비워야 한다. 다들 좋다고 하는 거기서 진짜 좋은지 되물어야 하고 시비를 걸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의 답이 뭔지 찾아 헤매야 한다. 아무도 궁금해하지도 않고 아무도 물어보지도 않는 그질문의 답을 혼자 그렇게 애써 찾아 헤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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