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는 어느 봄밤 자신에게 또렷해진 이 ‘서두르지 않기‘의방법론에 "절제"라는 이름을 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윤리학에서부터 ‘절제‘란 내 욕망과 관계 맺는 바람직한 방식이었다. 고대 철학자에게 욕망의 ‘강도‘가 문제라면, 우리의 시인에게 중요한 것은 욕망의 ‘속도‘다. 이 절제는 개인적·사회적 꿈을이루기 위한 긴 싸움에 나서려는 자에게 필요한 탁월성德, areté인것이다. 그가 절제를 "나의 귀여운 아들"이라 한 것은 그것이 ‘내가 낳았으나 오히려 나를 인도하는‘ 생각이기 때문이고, "나의 영감"이라 한 것은 그것이 향후 시작의 지침이 되어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