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질문하는 학생에게도 수능에 나올 리 없다고 단언할 뿐이다. 현실적 효용 없이 순식간에 휘발되고 마는 정동을 재현하고 공유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나‘는 국어를 가르치면서도 문학에 대한 근본적 회의주의에 빠져 있다. 관념과 현실을 모두 조소하는 동시에 자신의 소시민적 적응력까지 자조하면서 "냉소적 실용주의자"를자처한다. 이처럼 강박적 자기혐오에 젖은 ‘나‘의 ‘길티 플레저‘는 "젊을 적 5.18현장에까지 들어가 군사정권의 치부를 파헤치다가, 문득 극우 인사로 변모한"
조갑제의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는 것이다. 변하기 마련인 인간의 본성과 지식인의 모순에서 애상감과 기묘한 친연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