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봄. 하늘까지 잔인하여 봄철 내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던지독한 가뭄이 초여름까지 이어지던 어느 날, 나는 오랫동안 몸을의탁했던 그 고장을 떠나기 위해 역 대합실에 있었다.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영등포까지 가는 기차표를 산 뒤, 나는 문득 일 년 전의 그여자를 떠올렸다. 똑같이 송 과장한테 당했다는 동료의식이었는지아니면 그 여자 때문에 이 꼴이 되었다는 원망이었는지 알 수는 없다. 아주 잠깐 그녀를 떠올렸을 뿐 곧 나는 내 미래에 사로잡혀 착잡한 심정으로 그곳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