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북새통에서 케플러는 재정 지원처를 거의 모두 상실했다.
그의 말년은 돈을 빌고 후원자를 구하러 다니는 동동걸음으로 채워졌다. 전에 루돌프 2세에게 했던 것처럼, 그는 바렌슈타인 대공을 위해별점을 쳐 주었고, 바렌슈타인 대공이 지배하는 슐레지엔Schlesien 지방의 한 마을인 사간 Sagan에서 생의 마지막 나날을 보냈다. 케플러가 스스로 지은 비문을 읽어 보자. "어제는 하늘을 재더니, 오늘 나는 어둠을재고 있다. 나는 뜻을 하늘로 뻗쳤지만, 육신은 땅에 남는구나." 그러나 30년 전쟁으로 그의 묘마저 사라졌다. 오늘날 케플러의 묘비가 다시 세워진다면 그의 과학적 용기를 기리는 뜻에서 이런 문장을 새겨넣으면 어떨까. ‘그는 마음에 드는 환상보다 냉혹한 현실의 진리를 선택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