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 시민헌법‘은 반혁명의 불씨를 키우는 요소였다. 그럼에도 1년 전의 현실에 비해 확실히 민주화한 모습을 보여주는 개혁이었다. 새 프랑스를혈통보다 능력 위주의 사회로 만들어가려는 원칙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혁명 직전부터 개신교도와 유대교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 시작한 프랑스가 정교분리 원칙을 적용하면서 가톨릭교회를 국가 아래 둔 것을 보면, 문화적 구체제의 큰 뿌리가 끊겼음을 알 수 있다. 계몽주의자 가운데 볼테르의 주장만큼 혁명에 확실하게 반영된 것은 없으리라. 볼테르는 틈만 나면 가톨릭교를비판하고 더 나아가 종교적 자유를 주장했는데 이제 그 길이 확실히 열렸던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고, 프랑스는 크게 둘로 나뉘었으며, 왕이 파리에서 국경 쪽으로 도피하는 계획을 세우는 원인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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