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일본 방방곡곡에서 터져 나온 절규는 ‘잇신‘, 즉 과거로복귀하자는 이른바 유신이었다. 그것은 혁명과는 반대적 성격을띠며, 진보적인 것이 아니었다. ‘왕정복고‘와 함께 민심을 사로잡은 외침은 ‘오랑캐 추방‘이었다. 국민은 쇄국의 황금시대로 복귀하는 정책 강령을 지지했다. 이런 방침을 도저히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파한 소수의 지도자들은 그런 노력 때문에 암살되었다. 혁명을 싫어하던 일본이 갑자기 방침을 바꾸어 서양의 모범에 따르기로하고, 그로부터 겨우 50년 후 서양을 본령本으로 하는 분야에서 서양과 경쟁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