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종교의 분리는 근대국가를 만드는 첫걸음이었고, 그것은 종교적관용을 주장하는 계몽사상가들의 바람이었다. 16세기 이후 관용의 문제가늘 관심거리였고 계몽사상가의 ‘왕‘이자 ‘신‘으로 떠오르던 볼테르는 말끝마다 "수치스러운 것(가톨릭교)을 짓밟아 뭉갭시다"라고 했다. 심지어 그는 가톨릭교를 미신이라고까지 공격했다. 국회 안에서도 종교적 관용과 종교의 자유를 옹호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의원들 가운데 다수가 이미 종교적 관용이 대세임을 인식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미라보 백작이 정곡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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