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카프카적인 것이란 차라리 인간과 세계의 원초적인 가능성, 역사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을 영원히따라다닐 수 있는 가능성의 표현처럼 느껴진다.
이른바 민주주의적인 사회 역시 비인격화와 관료주의화의과정을 겪고 있다. 지구 전체가 이 과정의 무대가 되어 버렸다. 카프카의 소설은 이러한 세계에 대한 몽환적이고 상상적인 과장이다. 전체주의 국가는 그것의 산문적이고 물질적인 과장이다
신비화와 전설에 현혹되지만 않는다면 프란츠 카프카의 정치적 관심 어디에도 의미 있는 흔적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막스 브로트, 프란츠 베르펠, 에곤 에르빈키슈 같은 그의 프라하 친구들이나, 역사의 의미를 알려고 한다면서 미래 모습을 그려 내기만을 즐겼던 다른 전위주의자들과 구별된다
내가 카프카의 유산에 이토록 열렬히 집착하는 것이나 그것을 내 개인적 유산으로 옹호하는 것은, 모방할 수 없는 것을모방하는 것(그리고 카프카적인 것을 한 번 더 찾아내는 것)이 유용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의 소설들이 바로 소설(소설이라는 시)의 근본적인 자율성의 모범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바로이것에 의지하여 프란츠 카프카는 다른 어떠한 사회학적, 정치학적 성찰도 우리에게 말해 줄 수 없었던 우리 세기에 입증된그대로의) 인간 조건을 우리에게 말해 줄 수 있었다.
가벼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것을 나는 『농담』에서 이미 발견했다. "나는 먼지 이는 도로를 따라 걸으며, 내 삶을 짓누르는 공허, 그 공허의 무거운 가벼움을 느꼈다." 『삶은 다른 곳에』. "야로밀은 때로 끔찍한 꿈을 꿨다. 지극히 가벼운 물체, 찻잔이나 숟가락, 깃털 같은 것을 들어 올려야 하는데 도저히 안 되고 물체가 가벼울수록 자신이 약해지는 꿈, 물체의 가벼움 아래 짓눌려 버리는 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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