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막에 가면 마음이 편안하다. 가장 강인한 식물과 동물, 사람만이 그곳에서 살아남는다는 사실이 좋다. 파티마의 손을 향해 이동하는 도중 우리는 반디아가라 절벽에서 야영하면서 말리 중앙 고원 토착민족인도곤족과 며칠 동안 함께 지냈다. 그들 중에는 조상 때부터 1천 년이 넘도록 살아온 절벽 집에서 사는 사람이 많았다. 놀라우리만치 인심이 좋은 그들은 우리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다른 시대로부터 이어 온 다른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자동차로 1,600킬로미터를 달린 끝에 우리는 저 거대한 타워 무리에 도착했다. 파티마의 손 같은 곳을 사진으로 찍을 때 나는 그 아름다움과 크기, 스케일을 포착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경관을 제대로 나타내고 싶지만, 오랫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어떤 경관도 제대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관은 여러 분위기를 지닌다. 빛이 끊임없이 바뀐다. 경관의 모양과 느낌은 영원히 변화한다. 경관 전체를 포착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장면마다 그 장소의 느낌을 담음으로써 전체가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
스테프는 요세미티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어려운 목표물에 도전했다. 카라코람에서 어려운 봉우리 여러 곳을 최초 등정했고, 파타고니아의 토레에게 오른 최초 여성이자 피츠로이의 모든 봉우리를 등정한 최초 여성이다. 요세미티에서는 선망의 대상인 엘캐피탄의 35피치짜리 살라테루트를 자유등반한 최초 여성이 되었다. 또 엘캐피탄을 하루 만에 자유등반한 두 번째 여성이기도 하다. 스테프는 미래 세대 등반가들이 쉽게 넘볼 수 없는 기록을 세웠다. 스테프는 저술가로또 세계 수준의 베이스 점퍼로 활동하고 있다.
지지할 곳도 없는 열악한 지형에서 콘래드가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영웅적으로 길을 개척하면서 며칠 동안 더 오른 끝에, 마침내 17일째에 우리는 한계에 다다랐다. 우리는 정상을 60미터 남겨 둔 지점에서 하네스에 매달려 있었다. 계속 나아가려면 외기에 노출된 채 밤을 보내게 되어 동상이나 더 심한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극한을 찾아다니다 보면 이따금씩 실제로 극한과 마주치기도 한다. 추위에 감각을 잃고 지친 우리는 어두워진 저 아래로 내려갈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위로 정상을 마지막으로 슬쩍 쳐다보면서 절대로 이곳을 다시 찾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절대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 좋은 생각이 아니다.
키나발루 산 아래 로우 골짜기에 도착한 우리는 마크가 정말로 보르네오 한가운데에서 만만찮은 거벽을 족집게처럼 집어냈다는 것을 알았다. 750미터짜리 암벽을 반쯤 올라갔을 때 우리는 장비가 필요해 보이는 가파르고 무서운 피치와 마주쳤다. 알렉스는 장비를 동원하다니 가당찮다는듯 코웃음을 치며 선두를 잡겠다고 나섰다. 그가 난이도 5.12에해당하는 완전히 미지의 지형을 무방비한 맨손으로 정복하려 나설 때, 우리는 우리의 확보지점을 다시 점검했다. 그가 30미터 이상 추락할 경우 확보지점이 과연 버틸 수 있을까 궁금했다. 우리는 숨을 죽인 채 그가 암벽을 타고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덜 알려진 산맥 쪽 원정을 더 좋아한다. 무엇이 기다그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곳 레도마이네로 나아가는 동안 우리는 카와카르파 봉우리를 도는 불교 성지 순례길을 따라 이동했다. 이 산길은 기대하지 않은 발견이었다. 마침내 레도마이네에 도착한 우리는 서벽 아래에 베이스캠프를 쳤다. 1주 동안 적용 기간을 가진 다음 높다랗게 걸쳐 있는 빙하 위로 장비를 날라 5,200미터 지점에 캠프를 쳤다. 그다음날 바위와 눈이 섞인 곳을 타고 올랐고, 결국 눈 덮인 기다란 능선 위로 올라섰다. 우리는 화이트아웃에 가까운 상황에서 한쪽에는 크레바스가 반대쪽에는 오버행 눈처마가 있는 사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추고 발길을 돌려야 할지 논의했다. 12시간을 오른 끝에 마침내 10월 15일, 레도마이네 정상에 올라 스키를 타고 캠프로 내려왔다. 그 산 최초의 스키 하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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