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과한 욕심을 낳는다. 어떤 욕심인가? 여러 번의 퇴고 이후에야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을처음부터 통째로 거머쥐겠다는 불가능한 욕심이다. 세상에단번에 완성도 높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오죽하면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는 말이 있겠는가. 초고는 가건물이다. 세워놓은 뒤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다가, 결국 무너뜨리고 새로 짓기 위해 건설하는, 일종의 제물 혹은 희생양 같은 글더미다.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일시적으로 존재하다사라질 어설픈 가건물을 건너뛰고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의*건물을 만들겠다는 불가능한 소망이다.

나는 그저 많이 쓰겠다.
바로 이 말이다. 많이 쓰겠다는 이 말이, 1부에서 내가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다. 1부의 내용, 아니 이 책을 이루는 네 개의 부를 다 합쳐 단 하나의 생각으로 응고시킨다면이런 문장이 된다.
글쓰기는 양이다!

이렇듯 글쓰기란 본질적으로 힘든 작업인데 거기에다한국인은 사지선다형 교육과 몰아치는 근대화 과정에서 체화한 ‘성과 중심주의‘까지 갖고 있다. 잘 쓴 글(=눈에 띄는 성과)을 뽑아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가득 휩싸인 채 글쓰기장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아마 세계에서 글쓰기를 가장어렵게 느낄 국민 뽑기 대회를 하면 한국인이 단연코 금메달을 거머쥘 것이다.

바깥에 나가야 한다. 나가서 낯선 사람을 만나야 한다.
낯선 곳에 가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환기가되지 않는 곳의 공기는 탁해지는 법, 내 삶에 바람이 들어오도록 해야 했다. 혼자 틀어박혀 읽고 쓰기만 하는 일상에 균열을 내야 했다. 그래야 내가 쓰는 글에도 현실감과 생동감이 들어찰 것이었다.

"그런데 다른 수업에서 형식과 규칙을 엄격하게 정해주는 선생님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에 대한 내 답은 이랬다.
그 선생님의 방향을 따라가면 됩니다. 그분과 제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동일합니다. 다만 그분과 내가 그 목적지를 향해 갈 때 동원하는 장비가 다를 뿐이죠."

그에 기반해 흘러나온 그사람만의 정수를 알아보고 그것을 쏙쏙 빼가면 된다. 앎을전수해주는 사람들 간의 차이는 그들이 걸어온 인생 역사의차이이다. 배우는 이는 그저 그 ‘다름‘의 조각들을 자신의 인생 역사에 옮겨와 제 고유의 것으로 체화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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