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나는 털이 하얗고 몸집이 가느다란 동물을 떠올렸다. 스피츠, 페르시안, 페럿, 어쩌면 백조, 연유까지야알 수 없으나 막연히 내외, 혹은 그들의 아들이 키우던애완동물일 것이리라 짐작한 터였다. 호수를 둘 만큼집이 넓은 건 아니었다. 진짜 백조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딸처럼 아낀다면서 왜 입양은 안 한 거예요?" 마침내 궁금했던 걸 물었다. 그저 하나의 가능성을 제해보기 위해서. PR잠깐의 침묵 후 수화기 너머에서 와락 웃음이쏟아졌다. "딸이 아니니 딸처럼 아끼지."
나는 잠시 생각하는 척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아니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선배는 웃었다. 나는 정답을 말했다는 걸 알았다.
나는 휠체어 조작부의 스틱을 밀었다. 피아노포르테가 아니라 하프시코드 양식의 장치였다. 가하는 압력과 무관히 속도는 동일한데도 빨리 가고 싶으면 세게 밀게 되었다. 손가락에는 몇 그램의 근육이 필요할까. 나는 외투 무게에 압사당할 것 같은 기분으로 계속나아갔다. 추운 것보다는 낫겠지. 동사자의 주검은 옷을 다 벗은 모습으로 발견된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춥다 못해 뜨거워 훌훌 벗어던진다고. 나는 옷 무게를 견뎠다. 나체로 발견되고 싶지 않았다. 요철을 만날 때마다 허벅지 위의 튀밥이 토독토독 튀었다.
마음만 먹으면언젠가 딸은 내 살갗에 새겨진 징그러운 금의출처를 궁금해했다. 나는 리히텐베르크 무늬라고 알려주었다. 번개에 맞았다고. 너무 이르게 사둔 어린이 과학전집에서 읽었던 내용으로, 순전히 그 애를 겁주기위해서였다. 번개라는 말을 듣는 순간 딸애가 감전된사람처럼 움찔하는 바람에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도 아이는 손을 떼지 않았고, 나는 이 가여운 꼬맹이를 속인 것을 후회했다. 그날 나는 엄마가 오래도록 찾아 헤맸던 어릴 적 내 병증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번개에 맞았다는 얘기는 어쩌면 거짓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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