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솜거리를 벗어나 깊은 협곡 사이의 산길로 들어섰다. 금희는 걷는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맨 뒤에서 천천히 걸었다. 앞사람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려고 애쓰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말라붙은 강바닥의 너덜길을 걷고 있었다. 도로공사 중인 포클레인과 트럭을 지나치면서부터 물길로 내려온 것 같았다. 가장 무거운 짐을 진 포터는 얼마나 걸음이 빠른지 이미 보이지않았고, 미미와 윤의 일행도 한참 앞서서 가고 있었다. 금희는주위를 둘러보았다. 깎아지를 듯한 협곡의 거대한 벽에는 간신히 초록을 띤 덤불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고, 그 위로 푸른하늘이 열려 있었다.

그녀가 소리 높여 울 때는 오로지이루어지지 않은 욕망과 해소되지 않은 분노 때문이었다. 경옥이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임돈은 배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욕지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환멸이 몰려왔다. 경옥뿐 아니라 누구의 울음소리도 귀에 거슬리고 불편했다. 아무도 자신의 슬픔을 배려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순정한 슬픔이 아내와 집안 식솔들의 둔탁한 울음소리로 훼손되고 있었다. 기정의 여리고 따듯한 몸이 차갑게 굳어졌을때, 경옥에게 남아 있던 임돈의 마지막 한 조각 마음도 식어버렸다.

마치 어쩔 수 없는 일처럼 네 눈길이 나에게 붙박였음때, 나는 그것이 마음의 일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네 눈의 의지였고 네 눈의 일이었다.

나는 여자의 뒷모습을 삼켜버린 골목으로 들어가지 않을것이다. 여자의 맨발이 눈에 아른거린다. 맨발은 여전히 내머릿속에 남아 움직이고 있다. 나는 몸을 돌려 가로등 불빛이환한 오른쪽 길로 향한다. 몇 걸음 움직이기도 전에 여자가 어둠 속에서 달려나온다. 골목이 여자를 다시 토해낸 것처럼 보인다.

아직은 되돌아나갈 여지가 있는 불빛의 가장자리에서 멈춰선다. 나는 숨을 한 번 깊이 쉬고 달리기 시작한다. 달려서 어둠을 건너간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끊임없이 뒤돌아보면서,
신발이 벗겨질까봐 초조해하면서, 온 힘을 다해 달려간다. 골목은 영영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진다. 한 구비를 지나면 또 다른구비가 나오고 그곳을 간신히 돌아나오면 더 깊이 웅크린 어둠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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