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리나? 저 노래 제목은 <엘 콘도르 파사>야." "엘 콘도르 파사가 무슨 뜻이에요?" "콘도르는 날아가고." 날아간다는 걸 보니 콘도르는 새 이름인 듯했다. "날아갔다가 아니라 ‘날아가고예요?"
가능한 한두 사람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메고있던 배낭을 내려놓으면서 이경은 비로소 자신의 행색이 어수선함을 의식했다. 비에 젖은 바람막이를 입고 머리카락이 온통 흐트러진, 눈치 없는 중년여성으로 보였을 것이다. 괜찮아, 괜찮아. 이경은 마음을 다독였다. 낯선 곳에서 고작 며칠을 지냈을 뿐이었으나, 말을 알아듣고 표정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난 반가움이 컸다. 그냥 말을 걸어본 것뿐이다. 멀리 왔으니, 예전에는 하고 싶어도 하지 않던 일들을 하는 것뿐이다.
구름이 걷힐 때도 있어요? 설산이 완전히 드러나기도 해요? 그럼요. 나는 여기에 와서 구름이 걷힌 것을 본 적이 없어요. 구름은 산을 타고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요. 산을 완전히보려면 구름 아래에 있어서도 안 되고, 구름 속에 있어서도 안되고, 구름 위에 있어야 해요. 네? 여기서도 보인다면서요? 아, 그랬나? 내가 구름전문가는 아니거든요.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경은 안개라고 여기던 희뿌연 덩어리들이 구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경은 달빛과 뒤섞인 구름 속에 서 있었다. 산을 보려면 구름 아래에 있어서도 안 되고, 구름 속에 있어서도 안 되고, 구름 위에 있어야 해요. 기댈데 없이 허술한 상운의 말이 떠올랐다. 이경은 어둠 속에서 혼자 웃었다. 내일은 만년설을 볼 수 있을까. 내일이 아니더라도포카라를 떠나기 전 언젠가는 보겠지. 이경은 젖은 풀잎을 헤치고 앞으로 걸어갔다.
한때는 금희의 심장 속에도 구구절절한 사금파리들이 뾰족하게 박혀 있었다. 혈관을 따라 굴러다니다가 불쑥 자신을 찌르고 밖으로 튀어나가 타인을 겨냥하기도 했다. 그것들은 다어디로 갔나. 과거는 낡은 상자에 대충 부려넣어 창고에 쌓아둔 짐들 같았다. 얼마나 무거운지 내용이 무엇인지 이제는 가늠해보고 싶지 않았다. 아침에 승문의 메일을 확인했을 때도반가움만큼이나 두려움도 컸다. 혹시나 승문이 한국에 돌아오거나 그래서 다시 모든 과정이 똑같이 되풀이되면 어떡하나, 라는 불안이 전혀 없지 않았다. 다행히 승문은 귀국할 생각이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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