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은 미혹하여 알지 못한다(生而知)」, 이는 바로 제법실상을 명료하게 이해하지못한 것입니다.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심은 원래 중생의 본래 미묘한 지견을 열어 보이시기위함이다(如出世原爲開示衆生本妙知見)」, 이것은 왜 세간에 출현하시는지 설명합니다. 지견을 한번 열면(知見一開)」, 이것은 바로 불법에서 늘 말하는 정지정·불지불견佛見이자, 『법화경』에서 말하는 부처님의 지견을 개시오悟入함입니다. 「지견을 한번열면 일체 색은 부처님의 색이고, 일체 소리는 부처님의 소리이다(知見一開 則一切色是佛色一 衆生本來成佛)」, 「유정과 무정이 함께 일체종지에 원만하다(同)」와 같은 경계입니다. 이 두 마디 말과 화엄경』 상에서 말하는 「일체중생은 본래 성불하였다(一切切臚是佛船)」,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현전하는 십법계 의정장엄은 한바탕 꿈의 경계에 불과할 뿐임을 깨달아 아십니다. 그분께서는 이 경계 안에서 마음을 일으키지도 생각을 움직이지도, 분별하지도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일진법계에 머물러 계십니다. 그가 머무는 것은 부사의한 해탈경계입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미묘하여 말할 수 없습니다!
「범부일 수 있고 성인일 수 있다(能)」, 당신이 미혹하여 드러나는 것은 범부의모습이고, 깨달아서 드러나는 것은 불보살의 모습이지만, 이들은 모두 하나의 마음입니다. 「선할 수 있고 악할 수 있다(善惡)」, 한 생각에 자비심을 내면 마음은 선하고, 한 생각에 눈을 부릅뜨고 성을 내면 이른바 백만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립니다. 「부처님일 수 있고 중생일 수 있다(佛能生)」, 부처가 될 수 있고 또 구계 중생이될 수도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들 자신의 마음은 진실로 수많은 덕행(德)과 수많은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덕능을 가진 마음을 우리 자신이 어떻게운영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일심불란 속에는 무량무변의 지혜가 있지만, 이 지혜는 작용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분별지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것을 물으면 당신은 어떤 것을 답할수 있는데, 이는 후득지이고, 타수용입니다. 그것은 진실로 무소부지입니다. 그 자신은청정심에 있고, 선정 가운데 있습니다. 당신이 보살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물으면자신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보살은 다른 사람을 위해 복무하고다른 사람을 대신해 일을 하지만, 자신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표현합니다. 그래서우리는 마땅히 (후득지 · 대비심과 같은) 타수용을 자수용으로 여기고 (근본지 · 지성심과같은) 자수용을 타수용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바로 전도착란입니다. 아미타경』에서 말하는 「일심불란」, 「심부전도는 그 뜻이 매우 깊고 깊습니다. 불법의 지혜는 청정심 한가운데서 개발되고 현현합니다. 청정심을 닦으면 반드시계율을 닦아야 하는데, 바로 계율로 인해 선정을 얻고 선정으로 인해 지혜가 열립니다. 불법에서는 선정이 없는 지혜를 산란한 지혜인 광혜라고 하고, 반야지혜가 아니라세지변총世智辯10)에 속합니다.
그래서 법사품에서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수행인이 삼궤로써견지할 수 있고, 이 세 가지 법칙을 단단히 지키며, 나아가 안락행품에 있는네 가지 안락법을 닦을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떠한 경계에서든지 모두 하고자 하는바 마음에 따라(心所欲), 뜻대로 깨달아 알게 되어(得心手) 일체의 장애와 재난이저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법법마다 모두 미묘함을 얻어 우리 자신이 이런이치를 통달하려면 경계 한가운데 마음을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한 법도미묘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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