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강렬하고, 감정은 생생하며, 관점은 일관성 있지만,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더 강해지지도 더 약해지지도 않는단 하나의 어조로 비난과 책망을 퍼붓고 있다. 현대 사회의 병폐와 불만의 원인을 찾아 쭉쭉 거슬러 올라가 보면,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부터 발산된 듯한 행동을 하는 ‘해방된‘ 여성들의음흉하고 천박한 의도가 있다. 단 한 순간도-단 한 단락이나단 한 문장에서도ㅡ서술자는 서술 대상에 공감하지 않는다. 현대 여성의 관점에서 현대 여성을 바라보지 않으며, 현대 여성이 왜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이해할 마음이 없다. 글에서내적 움직임을 자극하는 데 꼭 필요한 역동성을 만들어내는것은 공감이다. 소설에서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인물들-『아들과 연인』에 등장하는 난폭한 아버지가 가장 유명하다-에게까지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는 로런스가 이 에세이에서는 ‘끈질기게 ‘다른‘ 존재로 남은 여성들 때문에 퇴락한 세상을 끊임없이 관조할 뿐이다.
상상력으로 쓰는 글에서는 대상에 대한 공감이 꼭 필요한데, 정치적 올바름이나 윤리적 온당함 때문이 아니라, 공감이없으면 마음이 닫혀버리기 때문이다. 교류는 실패하고, 연상의 흐름은 말라버리고, 작품은 편협해진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공감이란, 상대에게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입체감을 부여하는 수준의 공감이다. 우리 독자들로 하여금 ‘타자‘를 타자 자신의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감정이입이야말로 글을 진전시킨다. 『존경하는 어머니 Mommie Dearest *처럼 서술자는 아무잘못 없는 사람, 서술 대상은 괴물로 묘사되는 회고록은 상황이 정지 상태로 머물러 있기에 실패작이 된다. 드라마가 깊어지려면, 괴물의 외로움과 무고한 자의 교활함이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서술자가 단순하지 않아야 대상에게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다.
자기 신화화에 열을 올리는 미국 남부 출신 작가 해리 크루스는 자신이 자란 조지아주의 늪지 문화를 배경으로 길고 짧은 소설들을 쓴다. 에세이 나는 왜 내가 사는 곳에 사는가에서는 대리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이용하여 ‘고향‘에 대한 지독한 양가감정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심리의 치명적 급소를 탐구하기도 한다. 이 에세이 역시 작가의강렬한 선언으로 시작된다.
우리의 비밀은, 지금의 우리보다 더 큰 인물이 되고픈, 더 다채로운 인간이 되고픈, 우리가 경험한 모든 정체성과 환상적인 활극을 통합하고픈, 무엇보다 포리스트론 묘지로 향하기전까지 쭉 우리네 삶을 실험해보고픈 웅장한 염원이 여전히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해보겠다. 우리의 진정한 과제는 결국 우리 자신이었다. 마치 우리는 ‘약속의 땅‘이라는 옛날 옛적의 고리타분한 슬로건을 문자 그대로받아들여, 주변 공간이 아닌 우리 존재의 구덩이 속으로 흡수해버린 것 같다. 그리고 진정한 자아가 되어간다는 흥분에, 심지어는 되어가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혀서는 바지가 내려가 더러운 속옷과 앙상한 다리가 드러나기도 한다. 내 장담컨대, 웃음을 사는 건 마음 아픈 일이지만, 그것도 우리를 아주오랫동안 막지는 못한다. 우리는 일찌감치 걸려들었다.
‘내가 쓰는 것은 한 시간을 기분 좋게 보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아름다운 작품이 아니다. 퍽퍽한 현실로부터의 해방을 정****신의 고양을 선사할 교향곡이 아니다. 이 글은 절망 속에 쓰인 인생 이야기이다. ..……… 하층민의 애환이 담긴 이야기. 나는 30년을 살았으며, 이 세월 동안 인생의 쓴맛을 보았다. 죽음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아름다움을 위해 죽는 자들에 속해 있지 않다. 나는 다른 원인들로, 즉 가난에 지쳐서, 부와 권력에 희생되어, 대의를 위해 싸우다 죽는자들에 속해 있다. 사랑의 고통이나 환멸 때문에 절망에 빠져죽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우리 대부분에게 ‘지진은 새로운샘을 드러낼 뿐이다. 우리는 대지의 존재이며 우리의 투쟁은곧 대지의 투쟁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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