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은 일차적으로 상업과 소비를 뜻한다. 스토리셀링으로서의 스토리텔링은 사회를 변화시킬 힘이 없다. 탈진한 후기 근대에는 ‘처음부터 다시시작하기‘가 강조된 ‘초심자의 기분‘이 낯설다. 후기근대인은 어떤 것도 ‘신봉하지 않는다. 이들은 영원히 편히 쉴 곳만 찾는다. 어떠한 서사도 필요로 하지않는 편리함 또는 좋아요에 예속된다. 후기 근대에는어떠한 갈망도, 비전도, 먼 것도 빠져 있다. 따라서 후기 근대는 아우라가 없는 상태, 즉 미래가 없는 상태다.
포노 사피엔스는 ‘연속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일시적 실제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순간에 예속된다. 포노 사피엔스에게는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삶의 폭을 감싸고 자기의 역설로 그 폭을 채우는 ‘전체존재의 신장성‘이 낯설다. 포노 사피엔스는 이야기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장례식장에서의 셀카는 죽음의 부재를 드러낸다. 관 옆에서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는다. 죽음마저도 ‘좋아요‘를 유도한다. 포노사피엔스는 구원을 필요로 하는 호모 사피엔스를 뒤에 버려둔 채 앞으로 나아간다.
「당신의 모든 순간The Entire History of You」은 드라마 <블랙 미러〉 시리즈의 첫 번째 시즌, 세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이다. 여기 나오는 투명사회에서 모든사람은 귀 뒤에 그 사람이 보고 체험한 모든 것을 그대로, 그리고 빠짐없이 저장하는 이식 장치를 장착하고 있다. 이렇게 경험한 모든 것과 인식한 모든 것이 눈과 외부 모니터로 빠짐없이 재생된다. 공항 보안 검색대에서는 특정 시간대에 일어난 사건을 재생해서 보여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더 이상 비밀은없다. 범죄자들은 자신의 범죄 행위를 숨길 수 없다. 인간은 기록 안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다. 경험한 모든 것을 빠짐없이 재생할 수 있다면 엄밀히 말해 더이상 기억은 불가능하다.
정보사회와 투명사회에서 벌거벗음은 외설로확대된다. 그러나 우리는 억압된 것, 금지된 것 또는은폐된 것의 뜨거운 외설이 아닌 투명성, 정보, 소통의 차가운 외설을 논해야 한다. "더 이상 비밀이 아닌 것, 완전히 정보와 소통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의외설을 말하는 것이다."4" 정보는 그것을 감싸는 껍질이 없기 때문에 포르노적이다. 사물을 감싸는 껍질, 베일만이 설득적이고 서사적이다. 껍질 벗기기나 베일로 감싸기는 본질적으로 이야기에 필수적이다. 포르노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에로티시즘이 사소한 것에 집중하는 동안 포르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시간은 갈수록 원자화된다. 반대로 이야기는 연결을 의미한다. 프루스트에 따르면, 이야기하는 사람은 삶에 몰입하고 자신의 내면에서 사건들을 잇는 새로운 실을 뽑아낸다. 그럼으로써 고립되지 않은 관계들로 이루어진 조밀한 망을 형성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유의미해 보인다. 이 서사 덕분에 우리는 삶의 우연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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