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생각하면 이들 이미지의 각 장면은 본질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전혀 무의미하고 각기 무관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과거의 어떤 이미지에 대하여 심각하게 사고를 거듭하다 보면 그것이 미묘한 형태로, 더구나 본질을 꿰뚫고 있음을깨닫는 일이 있다. 그야말로 진리 그 자체가 아닌가 싶은 경우마저있다. 동물원에서 죽은 지 며칠이나 지나 쪼글쪼글 말라비틀어진새끼 원숭이를 질질 끌고 가는 어미 원숭이를 보았을 때가 그랬다. 그 광경을 보았을 때 나는 어느 누구의 설명 없이도, 커다란 진실을 획득한 느낌이 들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 확실한 이미지에 무슨 가공과 장식이 필요하랴. 설사 그것을 원고지 수백 매에 장황하게 써본다 한들, 필시 진실에서 빗나가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 그 자체가 사상이며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현상론에가까울지도 모르겠으나.
눈앞에 펼쳐져 있는 투명한 세계에서도, 실제로 거기에 몸담고보면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와 전혀 다른 자신을 발견할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짤막한 한 장면이 되어 가슴에 새겨지고, 사물에 대한 사고 방식을 미묘하게 좌우하며, 그에 어울리는 행동을 유발한다. 훌륭하다고 평가되는 지식인보다 교양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노인 쪽이, 눈길이나 몸짓에 있어서는 훨씬 더 중후함DE #1을 풍기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그러나 그건 그렇다 치고, 나는 작가인 이상 논(論)보다는 소설로 승부를 내고 싶다.
달이 떠 있든 떠 있지 않는 산촌의 밤에는 무시무시함이 떠다닌다. 도시에서는 밤이 시간을 두고 점차 깊어가지만 산촌의 밤은, 해가 떨어진 그 순간 느닷없이, 깊은 수조 가득 채워진 물이 일시에빠져나가는 것 같은 놀람과 함께 찾아온다. 줄줄이 이어진 산은 바로 코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인가에 켜진 불은 나무숲에 가려 가물가물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하지만,
바스락 하고 무슨 이상한 소리가 조금이라도 나면, 단박에 튀어일어나 그 녀석을 침묵시켜야겠다는 일념에, 한시라도 빨리 안도하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공격 수단을 분망하게 떠올린다. 마음 한구석에는 ‘바보 같은 짓‘ 이란 생각이, 다른 한구석에는 나 자신을비웃고 있는 웃음이 자리하고 있지만, 나머지 팔 할은 완전히 불미스런 밤의 페이스에 빨려들어가 있다. 만약, 지금 상상하고 있는 것이 나타난다면 이렇게 격퇴해야지, 하고 생각할 때마다, 그때 사용될 근육 여기저기가 피부 밑에서 파르르 경련을 일으킨다. 그러나전혀 나타날 기미가 없다. 물론, 그런 것이 출현할 턱이 없다. 만약정말 나타난다면, 전신의 피가 순식간에 얼어붙어 손가락 끝 하나옴짝달싹 못 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아 잊으려 애쓰는 과거의수많은 사건들을 곰곰이 되새겨보는 지경에 이른다. 그것들은 한결같이 나의 의지에 반하여 저지른 일이다. 나쁜 것도 틀림없는 나자신이고, 나쁘지 않은 것 또한 나 자신이다. 양자는 서로에게 죄를전가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런 일도 나를 감싸고 있는 어둠처럼무한한 것이 기분좋게 해결해줄 것이다. 그야 물론 먼먼 앞날의 일이겠지만, 어쩌면 내일일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열심히 싸워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내일 아침 해가 떠오르면 옷을 두툼하게 입고 숨가쁘게 산길을 오르내리며 땀을 흠뻑 흘리리라. 자신의 마음을 질책하고 싶을때는 육체를 질책하는 길이 최상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정리된다. 그때 불현듯, 장지문에 밤의 빛이 비쳐 무슨 형상이 만들어지는듯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반쯤은 잠에 빠져 있다.
‘글은 곧 사람이다‘ 라는 명언이 지적하고 있듯, 문체에 변화를준다는 것은 성격을 바꾸는 것에 비견될 만큼 힘든 일일까. 아니면, 단순한 도구에 불과한 붓과 문체를 동일시하는 것이 잘못이고, 오히려 화가의 터치나 색의 특징과 비교해야 하는 것인가. 아무래도그쪽이 타당한 듯하다. 이렇게 간단한 해답을 그리 오래도록 깨닫지 못하고 몇 년이나 갈팡질팡하였던 것은 아마도 내가 통신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문체 얘기로 돌아가자. ‘여름의 어쩌구 하는 제목의 소설(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여름의 흐름」ㅡ옮긴이)을 쓰기 시작했을무렵, 나에게는 빈틈없는 문체가 있었고,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거나새삼스럽게 문장력을 터득하기 위하여 공부해야 할 필요가 전혀없었다. 왜냐하면, 모르스 부호의 발신기나 텔렉스의 키를 두드리는것이 통신사의 가장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 밖에도 일손이 모자라는 직장에 있었던 덕분에 글자수를 줄이기 위한 체크며, 암호문을 해독하고 짜맞추는 일도 했기 때문이다.
어째서인지 시와는 바람직한 상태에서 조우하지 못했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나는 시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쓰면 무슨 대단한 이유라도 있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사실은그리 대수롭지 않다. 딱히 시 자체가 어떻다는 것이 아니고, 시의주변에 모여 있는 작자들이 남자 샹송 가수처럼 샘나는 패거리들이었다는 그런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나에게는더없이 그럴싸한 이유였다. 늘 그렇게 나는 며느리가 미우면 손자까지 밉다‘는 식으로, 내가 손대도 되는 것과 손대지 말아야 할 것을 선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와 비교하면, 대부분의 시는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고, 또 대부분의 소설은 지나치게 이완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영화가 빠른 속도로 쇠퇴하기 시작한 어느 날 갑자기, 소설이나 써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내 나름대로 시와 소설의 중간에 위치한다고 여겼던 영화를 대신할 수 있으면서 영화와는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쓰고자 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앞으로도 끈질기게 살아가면서 몇 편의 소설을 쓰려고40 4하는 나한테는, 이제 시간이 조금만 경과되면, 혹은 다음 소설에 착수하면 죄 잊어버릴지도 모르는 사건이고 마음의 동요라 해봐야탱크 로리가 폭발 사고를 일으켰을 때 받은 가벼운 충격 정도라고결론을 내리는 편이 상책일 것이다.
밤도 꽤 깊었다. 여느 때 같으면 벌써 잠들어 있을 시간이다. 그덕분에 상당히 흥분하였다. 어쩌자고 또 이렇게 흥분하고 말았는지. 불을 끄고, 빚은 지지 않는 건데 그랬다고 문득 후회를 하면서, 나는 또 생각한다. 그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데, 왜 흥분했나. 동업자가일으킨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어떤 평론가가 말한미학의 귀결이란 해석에 마음 한구석이 공명한 것인가. 아니면 또, 자살 행위에 반드시 따라다니는 감상적인 감정의 포로가 된 것인가. 아무튼 나와는 무관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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