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문드문 세상을 끊어내어한 며칠 눌렀다가벽에 걸어 놓고 바라본다.
횐 하늘과 쭈그린 아낙네 둘이벽 위에 납작하게 뻗어 있다.
가끔 심심하면여편네와 아이들도한 며칠 눌렀다가 벽에 붙여 놓고하나님 보시기 어떻습니까?
조심스럽게 물어 본다.

가을의 창가에 넘쳐 흐르는 하늘가을의 하늘로 피어오르는 안개그 사이로 기러기떼 흐르며우는 듯, 우는 듯, 흐느끼는 듯.
기러기발 사이로 활을 튕기며,
땅을 치며, 술대를 밀며,
소리 죽여, 죽여, 죽여넘치는 하늘, 피어오르는 강물부르는 소리.

그리고 또 다음다음 날인가빛 벌레들이희디흰 섬의 옷자락에내려앉던 그날그만 두 개의 섬도 차례로파도에 먹혀 버렸습니다.

사랑방 장지문을 여니 날 선 단도가 나는 듯이 발 앞에떨어집니다. 안방 보료 위엔 나리꽃 수천 송이가 허벅지를 내놓고 흐드러지게 옷습니다. 대청에서 둥그런 밧줄이 천천히 내 모가지를 겨냥하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첫간 짚더미 속엔 쉰 마리 독사가 한 마리 개구리를 놓고독을 품고 있습니다. 목욕탕 가마인 물이 펄펄 끊고 놋대야에선 날 선 장도가 누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엌에선 복어알 댓 근과 독버섯을 섞어 버무린 국이 끓고 있습디다. 뒤뜰엔 쏟아질 듯, 쏟아질 듯 벌통들이 거꾸로 매달려 흔들립니다. 담장은 돌들을 잘 깎아 두 길씩 쌓고 문을 내지 않았답니다.

은지銀紙로 도배를 한 방에 우리 식구 넷이 둘러앉았습니다. 남편 왈, 복숭아 속 같지? 아내 왈, 박하 냄새가나는데? 어린 것들 왈, 환하니까 배가 더 고파, 거울 속같아서 창피해. 오늘 남편의 일당은 금붕어 네 마리, 개구리 세 마리, 민물 가재 한 마리. 남편 왈 거기에 아들 둘을보태, 아내 왈, 어제도 보태구선, 남편은 오늘의 일당을한 줄에 꿰어 목걸이를 만듭니다. 아내는 얼른 구겨진 은지 밑에 개구리 두 마리를 감습니다. 어린 것 왈, 금붕어목걸이보담 수제비 목걸이가 나올 거야.

바람은 한 겹 저고리를 벗고 머얼리 한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한 나라의 창문이 열리고, 세 나라의 창문이열리고, 일곱 나라의 창문이 열리고, 열린 창문마다 물을버리던 늙은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무너져내리던 스무 나라, 백 나라. 불쌍한 그 나라도 보았습니다. 파도가맨발을 비비며 뛰어다니던 그 나라의 모래밭도 보았습니다.
<바다야, 그대 가슴엔 바람만 가득.>

빈 방에 의자가 하나 의자는 쓰러져 침을 흘렸습니다.
먼지들이 조금씩 모여서 낮게낮게 이야기하는데 느닷없이 먼지 하나가 먼지 하나의 뺨을 후려쳤습니다. 바람이수염을 흔들며 들어오자 먼지 열 개가 먼지 열 개의 뺨을쳤습니다. 그림자가 보이니? 먼지 하나가 제 몸을 갈라놓고 물어 보다가 슬쩍 뺨을 쳐 보았습니다. 먼지들은 온방을 낮게 더 낮게 헤매며 그림자가 보이니? 그림자가보이니? 빈 방에 의자가 하나. 의자는 문득 일어서서 창가로 갔습니다.

한방 건너고, 두 방 건너서사람들이 돌아온다.
불개미 한 마리에 불개미 한 마리가 앉혀서사각사각 사람들이 돌아온다.
잠시 수그려 보면여기서 소리들은 잦아들고잦아드는 소리마다 은밀한 불꽃이 튀긴다.

우리들이 던지던 종이 조각도 고별 스물 두 개도. 차례로 고우고우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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