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바르게 행하라고 가르치게 되지만바르게 행하라고 가르쳐도 그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자연 노여움이 따르게 되고, 이때 성을 내어 타박하면 도리어 가르침을 해치게 됩니다. 자식은 생각하기를, 아버지는 나에게 바르게 행하라고 가르치지만 아버지 역시 바르게 행하지 못한다고 느끼게 되어, 도리어 부자간의 정이 상합니다. 결국 부자가 서로에게 해를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맹자의 이야기로부터, 부모의 자식에 대한 불만이 혹은 자식의 부모에 대한 불만이 서로 완전함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입니다. 부모 자녀 간은 의보다 사랑이 우선이라는 점, 그러니 무엇인가를 가르치고자 한다면 좋은 사람을 찾아 그 가르침을 위탁하는 것이 오히려 지혜로운 일이라는 걸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만장이 물었습니다. "감히 벗에 관해서 묻겠습니다." 맹자가 답했습니다. "나이가 많음을, 높은 신분을 내세우지 않으며, 형제를 내세워 자랑하지 않는 것이 벗이 되는 길입니다. 벗이란 그 덕을 벗하는 것이니, 내세움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랫사람으로서 위를 공경하는 일을 ‘귀한 이를 귀히 여김(貴貴, 귀귀)’이라 이르고,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을 공경하는 일을 ‘어진 이를 존경함(尊賢, 존현)’이라고 부릅니다. 귀귀와 존현은 그 뜻이 같습니다!"
절제와 배려,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면서 살아간다면 어느새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로 가득해질 겁니다. 맹자는 그것을 귀귀와 존현으로 표현했고요. 맹자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의 주변부터 존중하고배려해 보면 어떨까요. 상대방을 귀하게 여겼을 때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존경‘일 테니까요.
자공이 말했습니다. "군자의 허물은 일식이나 월식과 같습니다. 잘못을 저질러도 모두 그것을 보고, 잘못을 고쳐도 모두 그것을 우러러봅니다."
하지만 일식이나 월식처럼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곧 그림자에서 벗어나 다시 밝고 환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식이나 월식을 본다고 가정해 볼까요.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일식과 월식, 그 자체를 보고 박수를 보내나요. 아닙니다. 해와 달이 어둠에 잡아먹히는 순간이 아니라 그 어둠을 벗고 다시 환한 모습을 되찾을 때입니다.
마지막 단계인 자기 존중의 욕구란 누군가로부터 높임을 받고, 주목과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명예욕, 권력욕 등도 이 단계에 속하며, 더 높은 차원의 자신감, 독립심, 자유같은 자존감도 이에 속하는데, 말하자면 자기 존중의 욕구는 사회적활동을 하는 인간으로서 자기를 완성하는 원천이며, 자신을 분출시키는 엔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지위가 높아질수록, 허튼 유혹을 이겨 낼 줄 알아야 합니다. 상대방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일종의 잘못된 미움받을 용기와의 결별이 필요합니다. 마흔에 필요한 것은 권위를 내려놓용기와 스스로 불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이지 미움받을 용기는 아닙니다. 마흔이 되어서도 여전히 미움이나 받고 있다면 그는공자의 말대로 ‘‘난 것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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