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답 대신 아직도 손님 사이를 누비며 인사치레하기에바쁜 장조카며느리를 눈으로 찾았다. 그러나 나보다 훨씬 잽싸게 큰동서를 찾아낸 둘째는 큰일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올라갈 걱정도 안 하고 바보처럼 느릿느릿 답답한 동작으로 비프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내 걱정을 했다.
"아직은 늦지 않았을 거야. 지금부터라도 서두르면・・・・・

역까지 저희들끼리 이렇게 찧고 까부느라 더는 나한테 끼어들새를 주지 않았다. 대구역에서 주차장이 만원이라고 휙휙 호루라기를 불며 진입을 막는 것을 기화로 그들은 나를 짐짝처럼 내려놓기만 하고 가버렸다. 부창부수해서 얼씨구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표를 살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걱정보다는 우선 그 눈꼴사나운 수작에서 놓여난 것만 해도시원해서 살 것 같았다. 형국이 형석이 내외는 내 앞에서 저러지는 않는다고, 내 자식들 두둔하고 싶은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도 밖의 그를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멋쟁이일 뿐아니라 체중관리도 잘한 것 같았다. 배도 안 나오고 다리도 길고걸음걸이는 여유 있고도 늠름했다. 나는 선반 위에 얌전히 개켜진 채로 있는 그의 트렌치코트를 쳐다보았다. 같은 상표는 아니지만 나도 꽤 괜찮은 바바리코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놈의 폐백만 아니었으면 나도 그걸 입고 왔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지금보다 적어도 십 년은 젊어 보였을 것이다.

그가 식구처럼 아낀다는 진돗개얘기를 하자 나는 마치 개 소리만 들어도 알레르기를 일으키는사람처럼 요란스럽게 질색을 했다. 그 모든 짓거리들이 그렇게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여북해야 자정이 넘었는데도 벌써 서울인가 싶었을까.

그의 명함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런 직함 없이 이름 석자하고 집과 사무실 전화번호만 들어 있는 간결한 명함이었다. 내가 그에 대해 뭘 안다고 나는 그게 그답다고 여겨져 더욱 호감이간다. 뭐 하는 사무실인지는 그닥 궁금하지 않다.

거울이 크지 않았다. 거기에 하반신만이 적나라하게 비쳤다. 나는 세 번 임신했고 삼남매를 두었지만 실은 네 아이를 낳아 셋을 기른 거였다. 세번째임신이 쌍둥이였다. 그중 아우를 돌 안에 잃었다. 쌍둥이까지 밴 적이 있는배꼽 아래는 참담했다. 볼록 나온 아랫배가 치골을 향해 급경사를 이루면서 비틀어짜 말린 명주빨래 같은 주름살이 늘쩍지근하게 처져 있었다. 어제오늘 사이에 그렇게 된 게 아니련만 그 추악함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욕실 안의 김 서린 거울에다 상반신만 비춰보면 내 몸도 꽤 괜찮았기 때문이다. 또한 욕조에 잠겨서나 나와서나 내 몸 중에서 보고 싶은 곳만 보고 즐기려는 마음도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나는 급히 바닥에 깔고 있던 타월로추한 부분을 가리면서 죽는 날까지 그곳만은, 거울 너에게도 보이나 봐라, 하고 다짐했다.

해가 바뀌니 환갑해였다. 낳은 해의 육감이 한 바퀴를 돌아온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육갑을 한다‘는 게 결코 칭찬이 아닐 텐데 너도 나도 내 앞에서 육갑을 하려 들었다. 설날 아침 큰아들도 전화로 세배를 대신한다며 그 얘기부터 했다. 나더러 회갑잔치 대신 미국 구경을 오라는 거였다. 나만 좋다면 잔치는 칠순으로 미루고 그렇게 하기로 저희들 삼남매끼리는 벌써 합의를본 모양이었다.

"요는 네 에밀 시집을 보내겠다는 게냐, 시방."
"사랑하시잖아요? 살기가 어렵거나 모시겠다는 자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해서 하는 재혼, 얼마나 근사해 누가 뭐래도난 엄마를 변호하고 자랑스러워할 거야."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사랑 타령을 하는 딸을 물끄러미 바라만보았다. 속으로는 제까짓 게 사랑에 대해 뭘 안다구, 사랑이 별거라던? 인생 그 자체일 뿐인 것을, 이렇게 가볍게 만들려고 할수록 짓눌리는 듯한 기분이 들긴 했다.

정열이라 지금 조박사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그게 없었다. 연애감정은젊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 정욕이 비어 있었다. 정서로충족되는 연애는 겉멋에 불과했다. 나는 그와 그럴듯한 겉멋을부려본 데 지나지 않았나보다. 정욕이 눈을 가리지 않으니까 너무도 빠안히 모든 것이 보였다. 아무리 멋쟁이라고 해도 어쩔 수없이 닥칠 늙음의 속성들이 그렇게 투명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내복을 갈아입을 때마다 드러날 기름기 없이 처진 속살과 거기서 우수수 떨굴 비듬, 태산준령을 넘는 것처럼 버겁고 자지러지는 코곪, 아무 데나 함부로 터는 담뱃재, 카악기를 쓰듯이 목을빼고 끌어올린 진한 가래, 일부러 엉덩이를 들고 뀌는 줄방귀제아무리 거드름을 피워봤자 위액 냄새만 나는 트림, 제 입밖에 모르는 게걸스러운 식욕, 의처증과 건망증이 범벅이 된 끝없는 잔소리, 백 살도 넘어 살 것 같은 인색함, 그런 것들이 너무도빤히 보였다. 그런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딘다는 것은 사랑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같이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그 짐승스러운 시간을 같이한 사이가 아니면 안 되리라.
겉멋에 비해 정욕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재고할 여지는 조금도 없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날, 곧 미국 갈 수속중인데 될 수 있으면 오래 머물 거란 얘기를 하고 나서 그의 반지 낀 손 위에다 내 손을 정성스럽게 포개면서, 한 번 과부 된 것도 억울한데 두 번씩 과부 될지도 모르는 일은 저지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완곡하게 말한다는 게 심하게 들리지나 않았을까. 눈치를 살폈지만 아무것도읽어낼 수 없었다.

그 동네를 원주민 동네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초가집이나조선 기와집이 남아 있는 건 아니었다. 60년대에 유행한 슬래브집들이 수리를 안 해 퇴락한데다가 좁고 더러운 골목길 때문에실제의 나이보다 훨씬 더 낡고 흉흉해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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