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와 ‘마시기‘도 기본적인 욕구의 표현으로 단순화할 수는 없다. 그보다 문화적인 욕구를 의식하고 충족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런 기본적인 욕구에 탐닉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기와 소스 등 배를 불려주고 원기를 되찾게 해주는 실질적인것에 현혹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먹을 것을 앞에 두면 마냥 행복해하며, 세상의 무분별한 소동은 물론이고 세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하소연도 무시한다. 그저 의자에 앉아 식물성 음식과 동물성 음식의 상호보완성을 따지며,
이 세상에서 근절할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어가고, 느릿한 소화과정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다른 하나는 모든 흥분 상태가 배제되는 휴식으로, 앞의 휴식보다 더 확실한 휴식이다. 이 휴식에는 어떤 일을 끝냈다는만족감마저 표현되지 않는다. 마음이 평온할 때나 갈등을 일으킬 때도 의식에 영향을 주는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이런 휴식 상태에 이르는 것은 무척 어렵다. 어떤 요소를 인식하면 그에 합당한 이미지가 우리 마음에 그려지게 마련이다. 예컨대수천 년 전부터 요지부동인 산들의 지층,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달리 그 위의 고원지대에 평평하게 펼쳐진 호수를 생각해보라.

결론적으로 약간 씁쓸하지만, 지식인들은 순박한 사람들에게 허용된 이런 형태의 휴식을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가? 지식인은 정의로운 중년의 친구다. 또 증거를 끈질기게 파헤치며 개념을 규명하고,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이론적인 대책들을 강구한다. 지식인이 수면의 상품화를 맹렬히 비판하고, 하물며 낮잠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은 새삼스레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식인은 인간이 냉정함을 되찾고, 세상의 흐름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존재라는 걸 깨닫는 데 인간의 위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약함을 혐오하는 듯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하루에게 내 약속을 어기는 때가 있다.
밤에서, 꿈에서 벗어나기가 힘들 때가 그렇다. 시작이 어그러지면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시작하는 게 부끄럽다. 하지만 내일이면 또 다른 새벽이 어김없이 내게 찾아올 것이다.

또한, 느림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고도 말하면서 ‘느리게 살아가는 법을 소개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자기계발서처럼 ‘어떻게 느리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하고 일목요연하게 쓰여지지 않아 선뜻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대로 느리게 읽으면서, 다시 말해서 목표를 세우지 말고 시간에도 쫓기지 않으면서 여유 있게 읽다 보면, 얼마든지 자기 나름대로 느리게 사는 법을 터득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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