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방해하지 않으려면, 또 잠든 어린아이를 깨우지 않으려면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야 한다. 공손한 사람들은 공원을 떠날 때, 세상을 떠날 때도 발끝으로 걷듯이 조용히 떠난다. 눈까지 내리까는 이유는 조심스러운 성격 때문이 아니라, 상대의 얼굴을 무례하게 빤히 쳐다보지 않기 위함이다. 누군가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눈길에서는 언제나 약간의 무례함이읽히게 마련이다.
"굶주린 배에는 귀가 없다." 입술 끝으로 마지못해 먹는 사람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다. 이 말은 혀로 핥아먹는 걸 거부하고, 입을 크게 벌려 과일을 우적우적 씹어 먹고, 시원한 포도주를 꿀꺽꿀꺽 마셔 갈증을 풀겠다는 뜻이다. 얼버무려 말하라. 말이 완전하면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하다. 말을 사 등분, 아니 팔등분 해보라. 그러면 말이 소중한 의미의 조각들임이 드러날 것이다.
과거의 매력. 우리는 과거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또 과거는 이제 전혀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몸이 과거를경계할 이유도 없다. 따라서 세계 전쟁이 시작되기 전은, 이제는 아득히 멀리 느껴져서 기억하기조차 힘들다. 그저 상식에서 벗어난 맹목적인 시대였던 것으로만 읽힌다. 그러나 우리시대 사람들은 과거가 없는 삶을 두려워하기 때문인지, 과거를 되살려내 라이프사이클에 억지로 밀어 넣는다.
우리 자신을 알려고 애쓰면, 진흙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 찾아온다. 주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노력이 헛된 시도라는 걸 인정하자. 오히려 ‘나‘라는 인물을 구성하는 모든 꼭두각시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 꼭두각시들을 능수능란하게 조작하며 즐기는 편이 낫다. 하나의 모자를 다르게 씌워보고, 또 하나의 저고리를 멋지게 꾸며보라. 이처럼 삶이라는연극을 재미있고 다채롭게 꾸며보라.
이런 공원에서는 아직도 혼자만의 삶이 가능하다. 물론. 리는 기혼자이고 배우자의 죽음을 바라지도 않는다. 돌봐야할 아이들도 있고, 막내아들의 수학 공부를 도와줘야 한다. 막내딸의 영국 여행 일정을 짜주기도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우리 영혼의 죽음을 슬퍼하고, 사라진 세월을 애도하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행렬을 바라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옛 모습을 지닌 공원에서는 이런 것들이 가능하다. 그런 공원에서 우리는 방황하는 다른 사람들을 마주하며 슬픈 마음을 서로 교환한다.
5깊이 생각해야 할 때 나는 사상가인 척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생각에 잠긴다. 온갖 개념들이 은유의 효과에 의해서, 또 이상하게도 평범한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신속하게 사라진다. 많은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며 내 마음이 활짝 열린다. 나는 고산지대 방목지에서 여름밤을 생각하는 목동이 된 듯한 기분에젖는다. 하나의 의미를 지닌 것도 확산해 관대해질 수 있다는걸 기꺼이 인정하며, 불확실한 항해를 포기한다. 내 능력을 훌쩍 넘어서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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