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나는 누구였고, 지금은 누구인가? 언제 내가 내 운명을 저버렸고, 언제부터 내 운명을 받아들였던가?" 요컨대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자신에게 주어진 인간 조건에과감히 맞서보라는 뜻이다.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들, 이 땅에존재하지 않게 될 때 영원히 어둠에 묻혀버릴 사람들의 이미지를 간직하기 위해서 그들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라는 뜻이다.
기계가 인력의 많은 부분을 대신하게 되면서부터 여가 사회를 재정비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사회학자들, 특히 앙드레고르스*처럼 유토피아를 꿈꾼 학자들은 한가한 시간을 새롭게 활용하는 법을 제안했다. 사회학자들은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제안들에는 약간 빡빡한 면이 있었다. 새로운 문화를 맞이한 시민들의 하루하루는 다양하고 매력적인활동들로 채워져서, 지금의 우리 사회가 편안하고 한가롭게보일 지경이었다. 무사태평하게 이것저것을 집적거린다는 건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물론 마르크스도 일찌감치 누구나 자신만의 시간에는 사냥꾼도 될 수 있고 몽상가도 될 수 있으며낚시꾼도 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의 글은 목가적인 분위기를 띠었고, 여가에도 실제 생활과 똑같은 압력이 가해질 거라는 걸 예측하지 못했다.
사르트르는 이런 상황을 일찍이 지적하며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서 모두에게 책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문자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끝없이 더 많은 일을 해야겠다는결의를 다지거나, 반대로 끝없이 계속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어 낙담하게 된다는 의미다. 전자의 경우라면, 초인은 더는 엘리트에게만 한정된 불확실하고 의심스러운 이상이 아니다. 곧우리 대부분이 체격과 지능, 의지와 능력에서 인간의 한계를넘어서게 될 것이다. 이미 새 세대는 정보통신기기를 다루는데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인간의 몸을정교하게 조작해서 몸의 힘을 다시 만들어가는 중이다.
한가로이 걷는다는 것은 시간을 멈추는 게 아니라, 시간에 떼밀리지 않고 그 흐름에 순응한다는뜻이다. 한가로이 걷기 위해서는 여유로움이 전제되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을 주목하라. 주목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는가?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이 있는가?..…더욱 냉철하게 관찰해야 한다....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낯선도시에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주변 전체가 낯선 곳으로 변하고, 눈앞의 공간이 도시, 도로, 건물, 인도··· 라고 불린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한가롭게 걷는 사람은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 생각하지도 않고, 기적과 성지를 새롭게 찾아내려는 계획에 참여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경이로운 숲을 거닐듯이도시를 산책하며 영감을 얻는 예술가들과 다르다. 예컨대 시인 앙드레 브르통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발걸음이 닿는 대로걷다 보면 나는 항상 그곳에 와 있다. 특별한 목적도 없이 거의언제나 그곳에 간다. 이 막연한 현상, 즉 나에게 그곳에 가라고부추기는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한가로이 걷기‘는 산책과 많은 점에서 다르다. 물론 한가로이 걷기도 흔히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소화에 도움이 되고, 맑은 공기를 허파에 가득 채울 수 있어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ㄴ무엇보다 일반적인 길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도시를 등지는 출발점이 아니라 우리를 대화나 명상으로 인도하는 길이라는 점이었다. 도시와 공원과 구역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의 생각이 달아나고 주의력이 분산되는 걸 막아주는울타리가 있었다는 점이다. 반면에 유명한 유적들은 우리 입씨름의 흐름을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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