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뜰이 생기면 두어평 앞뜰이 생기면 옮겨 심으리라 마음속 피고 지던 모란 모란이 피어나면 마당에 나가서 보리라 엄동설한에도 피고 지던 그 마음속 백모란
혼자 살아보니 혼자가 아니었다 혼자 먹는 밥은 언제나 시끄러웠다 없는 사람 없던 사람 매번 곁에 와 있었다 혼자 마시는 술도 시끌벅적
저 멀리 초겨울 첫눈에게 눈짓하는 춘삼월 마지막 눈발처럼
그리하여 혼자 있음이 넓고 깊어질 수 있도록 짐짓 모른 척하고 곁에 있어주는 생각들 멀리서 보고 싶어하는 생각들이 서로서로 맑고 향기로운 힘이 될 수 있도록
그러고 보니 우리 네 식구가 한달에 한번 밥 한끼 같이 먹기 힘든 우리 집은 여전한 대가족이다
그러면 그렇지 겨울이 옷소매를 놓아주려나보다 싶었다이른 아침 겨울의 언 발치에 보슬비 내린다 잔설 듬성듬성한 산등성이 나무들이 극세사 같다 열한시 방향 시야가조금 흐리다 내륙 산간의 가장 깊은 데를 넘어가는 늦겨울보슬비
그러면 그렇지 보슬비가 진눈깨비로 바뀌고 있다겨울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물러설 리 없다 겨우내 쌓인 눈이 한나절 보슬비에 녹아내릴 턱이 없다 겨울이 며칠더 머물러도 괜찮다 조급해하지 않기로 한다 병을 고치려면병이 드는 데 걸린 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침묵의 중심에서 가장 먼 곳까지 다시 다녀오기로 한다그러면 그렇지 이건 아예 투석전이다진눈깨비가 열두시 방향에서 들이닥친다 하늘이 급하게낮아지고 고드름 끝이 다시 빳빳해진다 장작불 괄괄하게 지피고 감자부터 한솥 쪄내야겠다
술기운이 대장까지, 충분히 내려가 있었다 고향 집 지붕에 찬 이슬 내릴 시간 장독대 해바라기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을 시간
오지 않는 당신 때문에 여럿이면서 하나입니다 가지하나이면서 여럿입니다
낮에는 더 낮아지고저녁에도 두 팔 벌려 기지개 켜는 곳높지도 크지도 않고 깊지도 않은느릿느릿 산의 북면(北面)달 우러르기 괜찮은 거기향월암으로 가자봅니다. 월광욕 가자백사장이나 몽돌 해변 일광욕 말고옥상이나 테라스에 누워해에게 다 보여주는 그런 적나라 말고그윽한 숲이 아니라도 좋다끝간데 없는 초원이 아니라도 좋다터질 듯 부푼 만월이 아니라도 좋다
땅 이름이 당신땅에서 떨어지지 않듯이 경기도 남양주 별내 그 먼 곳 당신이 기내 생에서 떨어지지 않듯이
봄보다 먼저 떠난 당신꽃진자리 새카맣게 영그는빛나는 열매는 생각하지 않는정작 봄의 완성은 외면하는매번 그랬듯이 앞만 보는 당신 자가당신은 거기서 무얼 하는 건가요
그래서 저는가로등 디자인이좋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불이 꺼진 낮에 그러니까가로등이 가로등이 아닐 때가로등을 많이들 보니까요재차 말씀드리지만가로등의 모습은 낮에 잘 보입니다
제 몸을 다 태워야가장 높이 날아오르는가장 높이 날아올라제 몸을 불살라버리는저것은 가장 높은 자진이다승화다아침 이슬이유난히 차고 맑은 까닭이다
그러다보면 등꽃 향기에 취해오월 한낮이 새카매지고 놀다가까운 지구 밖 어디선가는내가 이렇게 누워 있는 이 땅이하늘의 끝, 천장일 수도 있겠거니 하다가아니지, 모든 나무의 하늘은여기 땅이 마땅할 수도 있겠거니 하는 생각아니지, 등나무가 땅속에서 수고하는모든 뿌리를 위해 걸어놓는연등일 수도 있겠거니 하는 생각
입춘 우수 사이대설경보 나흘째백두대간 백색 산록 금강송우지끈 제 가지를 내려놓는다우지끈 뿌리까지 번개가 친다눈발을 받아내며낙엽송 가만히 서 있다가만히 제자리에 서서하늘로 치솟는다
지금 여기얼마나 많은 꿈이얼마나 많은 안부가 안타까움이저 달을 향하고 있는가지금 한밤인 곳곳은저마다 밤의 한가운데지금 하늘 밝은 곳을 올려다보는곳곳의 한밤의 중심은저마다 얼마나 어두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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