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awareness "만이 알아차림을 알아차립니다. "알아차리기 being aware "만이 알아차리기를 알아차립니다. 따라서알아차리기라는 경험과 알아차림의 존재를 간과하는 "우리we‘란 분명 스스로를 간과하거나 망각하는 것입니다.
알아차림의 스크린 위에서는 경험이라는 드라마가 펼쳐지고, 그로부터 ‘알아차리는 나라는 개념이 생겨납니다. 그것은대상적 경험과 너무나 밀접하게 엮여 있기에, 자신의 본모습을 잊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현존을 망각해버립니다. 마치 우리가 꿈속에서 내가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것과 같습니다.

알아차림을 숨기는 것, 알아차림을 경솔하게 놓치는 것, 알아차림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이를 기독교에서는 ‘원죄‘라고부르고, 베단타에서는 ‘무지 ignorance‘라고 부릅니다. 성경에서 주로 ‘죄sin‘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단어인 하타아chata ah는‘과녁을 벗어난다’라는 의미입니다

외관상 개별적인 자아가 대상적 경험 속에서는 더 이상 평온함과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제야 비로소 우리 안에서 평온함과 행복을 찾게 될 가능성이 열립니다. 바로 이 깨달음이야말로 본질적으로 평온하고 무조건적으로 충만한 순수한 알아차림으로 회귀하는 첫걸음인 동시에 해결책입니다.

우리는 알아차리기의 경험을 향하여 마음을 보낼 수 없습니다. 다만 경험에서부터 우리 마음을 멀리 떠나보낼 수 있을뿐입니다. 그러므로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알아차림이란 주의 집중을 이완시키고 대상적 경험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으로써 주의를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고 쉬게 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최상의 명상은 마음에 의해 이루어지는 어떤 정신적인 활동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스스로의 원천이자 본성인 순수한 알아차림으로 되돌아가고, 쉬고, 깊이 침잠하는 것입니다." 알아차림이스스로에게 되돌아가는 것, 자신의 본모습을 기억하는 것이곧 알아차리기에 대한 알아차림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명상과기도의 핵심이며, 영원한 평온함과 행복으로 향하는 직접적인 길direct path 입니다.

개별적 자아의 관점에서 볼 때, 순수한 알아차림의 본질로향하는 것은 욕망이나 갈망으로 느껴집니다. 본질적으로 이완되고 평온한 알아차림으로 끌리는 것은 개별적 자아의 수축contraction 때문이며, 이것이 곧 은총의 끌어당김attraction입니다.
신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곧 우리를 향한 신의 사랑입니다.

명상이란 우리의 자아를 이런 의미에서 기억하는 것입니다. 순수하고 빛나며 본래적으로 평온하고 무조건적으로 충만한 알아차림에 대한 경험, 우리 자신은 이미 언제나 그러한경험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경험과 늘 함께합니다. 그것은 생각, 느낌, 감각, 지각 때문에 가려지는 듯 보일지라도제로는 결코 가려지는 법이 없습니다.

무한을 알 수 있는 것은 무한뿐이며, 유한을 알 수 있는 것은 유한뿐입니다.
대상적 경험을 알기 위해서 무한한 알아차림은 유한한 마음의 형태를 취하지만, 스스로를 알기 위해서라면 마음의 형태를 취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알아차림은 마음의형태를 통해 생각, 이미지, 느낌, 지각, 인식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형태를 통해서는 알아차림은 그 자신을 알 수없습니다.

스크린의 활동이 영화이고, 바닷물의 활동이 해류이듯이,
알아차림의 활동이 곧 마음입니다. 이처럼 마음은 알아차림이 움직이는 것이며, 알아차림은 마음이 쉬는 것입니다.

마음은 알아차림의 활동이자 창작물입니다. 알아차림은자신이 만들어 낸 것 속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듯합니다.
알아차림은 자신의 활동 속에서 스스로를 가려버립니다.
명상이란 알아차림을 스스로의 활동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입니다.
명상을 통해 알아차림의 단순한 경험은 우리가 알게 되는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줍니다.

명상이란 마음의 활동을 가라앉히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마음의 본성이 순수한 앎, 곧 알아차림이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오직 알아차림만이 알아차림을 압니다. 비활동non-activity,
혹은 비실천non-practice 으로서의 명상을 통하여 마음의 활동은 가라앉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의 본질인 순수한 알아차림이 제약으로부터 벗어나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알아차림에 대한 인식, 즉 알아차림이 스스로를 아는 것은새로운 무언가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늘 볼 수있던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새롭거나 특별한 종류의 경험이 아닙니다. 경험자체의 본질이 스스로 드러나는 것이죠.
알아차림은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인식될 뿐입니다.

"나는 알아차리고 있는가? Am I aware?"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물론 "그렇다"입니다. "나는 알아차리고 있는가?"라는질문은 첫 번째 생각이며, 우리는 아직 답변에 대해 확신하지못합니다. "그렇다"라는 답변은 두 번째로 일어나는 생각이며, 이때 우리는 그 답변에 대해 완전히 확신합니다.

사실 알아차림이 스스로를 알아차리도록 변화하는 것은아닙니다. 태양이 언제나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알아차림도언제나 스스로를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나는 알아차리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그렇다"라는 대답사이에서 잠시 멈추는 순간, 마음은 그 작용을 멈추고 한계로부터 벗어나서 무한한 알아차림으로 드러납니다. 그리하여스스로를 빛내며 스스로를 압니다.

1마음은 항상 어떤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스스로에게 "나는 알아차리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그때야 비로소 대상이 없는 방향으로의 여정,
즉 ‘길 없는 길‘ pathless path 이 시작됩니다. 생각, 이미지, 느낌,
감각, 지각으로부터 벗어나서 그 본질적이고도 환원 불가능한 순수한 알아차림으로 향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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