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라의 논의는 주로 베단타 철학에 기반하고 있지만기독교나 불교의 관점도 수시로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은 베단타 철학 자체를 다룬다기보다는 신비주의적이고도 종교적인것들을 싹 걷어내고 핵심적 논의만을 추출하여 현대적이고도 일상적인 언어로 설명한다. 그럼으로써 가장 영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증류 과정을 거쳐 원액을 뽑아내듯이 베단타철학으로부터 핵심만 추출한 그의 논의는 기독교나 불교의가르침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는 전혀 종교적이지 않지만, 어떠한 전통적인 종교 지도자보다도 더욱더 영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동시에 어떠한 명상 지도자보다도 더 구체적이면서도 명확한 명상법을 제시하고 있다
특별한 수련법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게 해주겠다거나 신비한 경험을 하게 해주겠다는 "명상 전문가는 사실 명상이 뭔지 잘 모르는 사람이라 보면 된다.
이러저러한 경험을 하고 있음을 늘 알아차리고 있는 존재가 곧 진짜 ‘나‘다. 내가 어떤 행위를 할 때 그행위가 일어남을 알아차리고 지켜보는존재가 곧 진짜 "나"다. 이 진짜 나를 알아차리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늘 알아차리고 있다. 다만 잊고 있을 뿐 뒤에 배경에 늘 있다. 나는 이것을 ‘배경자‘라 부른다. 스파이라가 이 책에서 영화 스크린에 비유하는 것이 바로 이 배경자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다시 손에 있는 휴대폰을바라보라. 휴대폰은 내가 아니다. 하지만 이 휴대폰을 바라보고 인식하고 경험하는 주체는 분명히 있다. 그것이 바로 나다. 휴대폰이 "나"인 것이 아니라 휴대폰을 바라보는 것이 나다. 휴대폰이라는 대상을 경험하는 주체가 곧 진짜 나다. 내가지닌 온갖 소유물들 역시 그 자체로서 "나"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알아차리고, 인식하고, 경험하는 주체가 진짜 "나다.
명상이란 말과 말 사이의 틈에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실제 명상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한 문장과 다음 문장 사이에긴 정적이 있습니다. 명상하는 사람들은 고요함 속에서 한 마디 한 마디를 자신의 경험을 통해 탐구하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실제 명상 모임에 앉아서 명상 가이드를 듣는 것과 유사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각 문장과 단락 사이에 공간을 두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했던 순간이 반복되기를바라면서, 이전과 마찬가지로 원하는 대상적 경험을 추구하거나 싫어하는 대상적 경험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결국 사람들은 결핍, 탐색, 일시적인 충족이라는 무한한 순환에 중독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Thoreau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용히 절박한 삶을 살아간다"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이러한 깨달음에 도달하고 나면 더 이상 대상적 경험에서지속적인 평온함이나 행복을 찾으려는 시도를 할 수가 없게됩니다. 이러한 직관을 자꾸 잊어버리고 대상적 경험에서 만족감을 찾으려 하면 할수록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만을점점 더 자주, 더 강하게, 더 분명하게 깨닫게 마련이지요. 이러한 직관을 무시하다가는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마음이 알아차림의 빛의 방향을 경험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로 향하게 할 때, 마음은 점진적으로, 때로는 갑자기, 자신의 한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지금까지 대상적 경험 속에서 찾아 헤매었던 평온함과 행복이 바로 자신의 모습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평온함과 행복이 우리 자신의 본질이라면, 왜 우리는 항상평온함과 행복을 경험하지는 않는 것일까요? 당연히 떠오르게 마련인 의문입니다. 왜 다른 일반적인 경험과 마찬가지로행복도 가끔씩 경험하게 되는 것일까요? 행복과 불행 모두알아차림 안에서 번갈아 생겨나는 대상적 경험이 아닐까요?
행복이라는 우리의 본래적인 상태가 잠시 드러나는 순간은 마치 잿빛 구름 사이로 파란 조각하늘이 살짝 드러나는것과도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행복이라는 것은 그저 불만족이라는 구름이 잠시 없어진 일시적인 상태에 불과하며, 사람들은 그 행복한 상태로부터 얼른 도망가 버리고는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마음mind‘의 본래적 모습을 깊이 탐구해본다면, 즉 생각, 느낌, 감각 지각의 여러 층위를 뚫고 내려가서 우리 마음의 본질적이고도 환원 불가능한 실체에 도달하게 된다면 우리는 항상 그곳에서 파란 하늘과도 같은 평온함과 온전한 충족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행복은 불행과 더불어 번갈아 일어나는 일시적인경험이 아닙니다. 파란 하늘과 구름이 서로 반대가 아니듯이행복과 불행이 서로 반대는 아닙니다. 구름이 파란 하늘을 잠시 가리고 있듯이 불행은 행복을 잠시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우리의 본성이며,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도 마음의 원천에, 우리 자신의 핵심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획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드러날 수 있을 뿐입니다.
가장 깊고 본질적인 내면에 존재하는 평온함과 행복에 도달하기 위하여, 대부분의 명상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음에집중하고, 마음을 관찰하라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명상은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마음의 본질을 명료하게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알아차림 그 자체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알아차림이세상에 대한 앎과 경험에 충만해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물과 실체의 존재의 유일한 근원이 알아차림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알아차림은 모든 것을 초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이미 내재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알아차리기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존재하는 연속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오히려 알아차리기는 시간을 초월해서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시간의흐름이라는 개념이 너무도 익숙하므로, 여기서는 일단 알아차리기가 모든 경험 속에서 지속적으로 존재한다고 해두겠습니다.
지식과 경험은 언제나 변화하지만, 그것에 대한 알아차림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경험하는 대상은 항상 변화하지만, 그것에 대한 알아차림은 늘 그대로입니다.
알아차리기는 모든 지식과 경험의 주된 요소입니다. 또한모든 지식과 경험이 생겨나는 배경입니다. 알아차리기는 모든 경험이 나타나는 매개체입니다. 모든경험은 알아차림을 통해 알려집니다. 궁극적으로 알아차림은모든 경험이 만들어지는 바탕이자 실체입니다. 알아차리기는 모든 앎에 있어서 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알아차리기는 모든 경험에 있어서 경험한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경험에서 가장 명확한 요소이면서도 우리가 늘 간과하고있는 것이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따라서 이는 카슈미르 시바Kashmir Shaivite 철학 전통에서 "가장 잘 숨겨진 것보다 더 숨겨져 있으면서도, 가장 명백한대상보다 더욱 명백한, 가장 위대한 비밀"이라 일컬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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