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그녀가 태어난 계절, 즉 ‘나의 계절’이었으므로, 전부터 봄이 되면 이상하리만치 특별하게 건강과 활력이 돋는다고 믿었다. 따스해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새들을 부르는 로잘리의 얼굴은 환히 빛났다. 마당의 꽃밭에서 처음 피어난 크로커스, 수선화, 히아신스나튤립의 새싹이나 꽃잎을 볼 때면 눈물을 글썽일 정도였다. 교외로 소풍을 가다가 길가의 사랑스러운 오랑캐꽃, 노랗게 핀금작화와 개나리 덤불, 빨간색 또는 하얀색의 산사나무꽃, 라일락, 밤나무의 붉고 하얀 꽃, 이 모든 것에 대해서 그녀는 딸도 함께 감탄하고 황홀감에 빠지기를 바랐다. 로잘리는 화실로 꾸민 북향 방에 자리한 추상적인 그림 사이에서 딸을 끌어냈고, 안나는 종종 가운을 벗어 버리고 어머니와 함께 몇 시간이고 즐겁게 산책을 했다. 그럴 때 안나는 놀랄 만큼 잘 걸었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될 수 있는 한 움직임을 줄여서 절뚝거리는 모습을 감추려고 했지만, 혼자 있으면 마음 편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으므로 꽤 오래 걸을 수 있었다.
로잘리는 보리수가 꽃피는 7월에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때 역시 그녀가 좋아하는 계절로, 창문을 열어 놓으면 몇주동안 가로수의 형언할 수 없이 맑고 부드러운 향기가 집 안을가득 채워서 입가에 황홀한 미소를 머물게 했다.
T "엄마, 그렇게 말하면 엄마는 나이 든 여성을, 인생의 과업을 완수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그 자연에 의해 새롭고 안락한 상태로 옮겨 가면서 위엄을 얻은 여성을 경멸하고 조롱하는 거예요. 생리를 마치는 것은, 말하자면 보다 높고 아름답고 명예로운 경지이므로, 여러 사람들에게, 가까운 사람에게든 먼 사람에게든 여전히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닌가요? 남자를 부러워하시는데, 물론 남자가 여자에 비해 성생활면에서 자유로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나는 그게 과연 좋은지, 부러워할 가치가 있는지 의심스러워요. 그리고 모든 기품있는 민족은 항상 노부인을 존중하고 신성시했어요. 그러니우리도 엄마의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노년의 위엄을 신성한것으로 생각하도록 해요."
"그래요, 엄마, 이해해요. 하지만 이것 보세요. 몸하고 마음은 하나예요. 육체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심리적인 것 역시자연이에요. 자연은 심리도 포함하니까요. 너무 두려워하실필요 없어요. 엄마의 마음도 머지않아 몸의 자연스러운 변화와 화합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세요. 감정은육체의 영향을 받는다, 또 우리의 감정이 변화된 몸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 힘겨운 임무를 맡으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몸한테 그 일을 떠넘겨서 직접 해결하게 한다고, 왜냐하면 육체가 감정을 상황에 맞도록 조율해 주거든요." 어째서 자신이 그런 말을 하는지 튀믈러 양은 알고 있었다. 엄마가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을 즈음, 집에서 종종 새로운 얼굴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 얼굴은 전에 없이자주 보였고 그 탓에 일종의 미묘한 기류가 생겨났는데, 안나의 조용하고 신중한 관찰을 결코 피해 가지 못했다.
그는 거리낌 없이 살롱을 오갔다. 여자들한테 편하게 굴면서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 여자들앞에서는 모국의 풍속에 따라, 괜스레 식사 때 고기를 잘게 썬 다음 나이프를 접시 가장자리에 비스듬히 올려놓은 뒤에 원손은 내려놓고 오른손에 포크를 쥔 채로 썰어 놓은 고기를 집어 들었다. 자기 나라의 습관을 그대로 고집했는데, 옆의 여자들이나 건너편의 남자들이 굉장히 흥미로운 눈길로 자신의식사 모습을 쳐다보고 있음을 알았다.
"얘야, 이건 있잖니, 말하자면 가슴속의 일인데, 놀랍고수수께끼 같고 전능하고, 때로 우리에게 아주 이상하고 모순적이고 심지어 이해할 수 없는, 자연의 일이란다. 너도 알 거야, 안나, 요즘 나는 몇 번이고 너의 옛날 일이, 그 얘기를 꺼내서 미안한데, 브뤼너와의 일이 생각나는구나. 지금하고 상당히 비슷한 시간에 네가 고백했던 그 괴로움 말이다. 그때 너는자신에게 화를 내면서 심지어 그 갈망을 치욕이라고 불렀지. 너의 이성과 판단이 너의 심장, 네 말대로 하자면 너의 관능과대립하게 되었음을 수치스러워했어."
"얘야, 네가 단지 나를 위로하려고, 내 고통을 달래 주려는 동정심으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길 바란다. 내가 너한테동정을 바라는지도 모르겠다만, 그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아. 내가 겉으로는 동정을 바라는 듯 보일지 몰라도 사실 그런 고통이나 수치심마저 나의 행복이고, 내심 이 ‘고통의 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단다."
보트 모양의 모직 슬리퍼가 자꾸 발에서 벗겨지려고 했다. 폰 튀믈러 부인은 결국 한쪽 슬리퍼를 발에서 놓쳤다. 그것은 바닥에서 미끄러지더니 상당히 멀리 사라져 버렸다. 키튼이 웃으면서 슬리퍼를 집어다가 무릎을 꿇고 신겨 주는 동안, 두 사람은 다른 관람객들보다 뒤처졌다. 키튼이 다시 부인의 팔꿈치를 잡았지만 부인은 앞의 방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꿈꾸는 듯한 미소만 지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그의 손에 기댄 그녀가 몸을 돌려서 아까 열렸던 벽지 문에 성급하게 손을 댔다.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으로도 도무지 상상해 낼 수 없는결혼이 있다. 연극에서 용납되듯이, 늙고 어리석은 인물과 아름답고 생기발랄한 인물처럼 극명하게 대조되는 한 쌍이 모험적으로 결합하더라도 그저 의혹 없이 수용해야 하는 것이있다. 그런 설정은 (연극의 전제가 되기도 하고, 특히 익살극에서라면 수학적 구성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숨 막히는 침묵이었다. 잠시 후 더욱기이한 일이 벌어졌는데, 로이트너 씨가 마치 전염이라도듯 흥분해서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격하게 들뜬 채 몸을떨면서 서둘러 말했다.
홀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시선을 주고받았다. 악단 주자들은 악기를 꺼내 놓았다. 그때까지 무관심한 듯 삐죽내민 입술 사이에 담배를 물고 말없이 문에 기대서 있던 로이트너 씨가 암라 야코비와 함께 무대 장막의 정면 한가운데있는 피아노로 가서 나란히 앉았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악보를 초조하게 뒤적였고, 다소 창백해진 암라는 한쪽 팔을 의자팔걸이에 올려놓은 뒤 매섭게 관객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모두 목을 빼고 기다리는 동안, 마침내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날카롭게 울렸다. 로이트너와 암라가 도입부의 중요하지 않은 몇 박자를 연주하는 사이에 서서히 막이 올랐다. 비로소 루이스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든 평생 잊지 못할사건이 벌어졌다. 끔찍하고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 찰나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생생하게 설명해 보겠다. 「루이스헨」이라는 제목의 우스꽝스러운 노래는 잘 알려져 있다. 틀림없이 다음과 같은 구절을 기억하리라.
한순간 정적이 흘렀고, 이내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리더니대혼란이 일어났다. 용기 있는 몇몇 신사들과 젊은 의사가 관현악석을 가로질러 무대 위로 뛰어올랐고, 곧장 무대의 막을 내렸다.
곧 젊은 의사가 다시금 홀에 나타났다. 진지한 얼굴에 턱수염을 기른 자그마한 유대인이었다. 문가에서 자신을 둘러싼 몇몇 신사들에게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끝났습니다."
「루이스헨」은 토마스 만이 25세에 발표한 단편으로, 이보다 먼저 발표한 「행복을 향한 의지」(1896) 와 키 작은 프리데만 씨」(1897), 그리고 이어지는 「트리스탄」(1903)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 즉 무언가 부족하고 결여된 현실에서 소외된 남성과 그를 파멸로 이끄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것은토마스 만의 대표작들이 거의 다 남자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을뿐만 아니라, 여성 인물의 역할이 미약했음에 비춰 볼 때 흥미로운 점이다.
「루이스헨」은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연극적 진행을 보여주는데, 야코비의 파멸은 음악에 의해, 그리고 음악과 더불어 이루어진다. 토마스 만의 어느 작품에서나 음악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만(『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의 한노, 트리스탄』의 슈피넬, 『파우스트 박사의 아드리안 레버퀸), 특히 창작 초기에 쇼펜하우어의 철학, 바그너의 음악으로부터 큰 영향을받았음은 잘 알려져 있다. 바그너의 「니벨룽겐의반지」가 보여 주는 장엄한 몰락의 정서, 「파르시팔」의 죽음을 통한 구원,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Liebestod)은 토마스 만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몰락, 환멸, 타락, 죽음과상통한다. 여기에서 죽음은 달콤하고 아름답고 도취으로 묘사되는데, 니체의 바그너 비판에 따르면 이러한 탐닉은 퇴폐적인 것이다. 데카당스란 몰락과 죽음, 퇴폐와 퇴락을 지향하는 태도로, 본디 인간에게는 파멸과 소멸에 대한 동경이 있고,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갈망하는데, 이 같은 죽음에의 동경이나 구원을 니체는 현세 부정의 기독교 정신에서 나온, 파괴적 충동이라 비판한 바 있다. 탐미적, 염세적, 낭만적, 엘리트적이며 독일적인 이 몰락의 정서는 토마스 만의 마지막 완성작 「기만」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사랑을 완성하고자 곧 찾아가겠다고 약속하지만 로잘리는 그날 저녁도, 다음 날도 켄을 찾지 못한다. 출혈로 의식을잃은 그녀는 병원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이후부터 사건은 매우 객관적으로, 의학적 용어를 가지고 서술된다. 상황은 절망적이다. 하지만 로잘리는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자연에대한 사랑과 신뢰를 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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