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스와 동료들은 로봇이 장난감을 가리키며 불특정한 소리를낸 다음, 놀이 친구들끼리 서로를 흉내 내며 독자적인 ‘언어‘를 개발하도록 프로그래밍했다. 과제는 당연히 로봇이 의식이 있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는지, 아니면 의식과 생각이 있는 것처럼 흉내 낼뿐인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스틸스는 한 가지 답에 매달리고자하지 않았다. 다만 로봇에게 그 어떤 정신적인 능력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일지라도 로봇이 의식을 얻기에 무엇이 부족한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칩이 더 빨라지면 의식을 얻기에 충분할까? 저장용량이 더 커진다면? 소프트웨어가 더 원숙해진다면? 언젠가는 이 작은인형이 감각을 느끼고, 자신의 인생을 깊이 고찰하고, 심지어는 연구소를 부수고 탈출하려고 시도하게 될까?

다트머스의 연구진은 컴퓨터와 뇌의 명백한 유사점에 주목했다.
뇌 또한 입력과 출력이 있는데, 이는 각각 인식과 행동이다. 또 모든인간이 문제를 해결한다. 뇌의 신경세포는 신호를 전달하거나 전달하지 않는데, 이것도 컴퓨터에 전기가 흐르거나 흐르지 않는 것과유사하다. 이에 따른 강력한 명제는 다음과 같다. 인간 또한 컴퓨터다. 다만 인간은 규소 칩 대신 효율이 매우 뛰어난 생물학적 하드웨어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의 정신은 생물학적 하드웨어를 움직이는8
소프트웨어, 즉 웨트웨어Wetware다. 이 주장이 옳다면 인간은 다른방식으로도 컴퓨터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똑같은 소프트웨어로 움직이는 다른 하드웨어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설은 의식의 진정한 근본이 우리의 뇌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말에서 무엇이 우리 뇌를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지는 알 수 없다.
결국 우리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간다. 의식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누구도 풀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우주가 얼마나 경이롭고 우리의 정신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체현이라는 접근법을 주장하는 사람 중 몇몇은 덜 전투적이며 남들과는 조금 다른 측면을 강조한다. 이들에 따르면 신체감각은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신체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정신적인능력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즉 우리의 신체는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고 손으로 수어를 표현해 대화를 나누고 발이나 팔로 길이를 재는 용도 이상의 것이다. 생각 또한 일종의 신체 움직임으로 볼수 있는데, 우리가 생각을 ‘한 걸음씩‘ 단계적으로 진행한다고 표현하거나 문제를 파악‘한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게다가 감정은 신체적으로 경험하는 경고 체계다. 두려움으로 인한몸의 떨림이나 심장박동은 우리에게 위험한 상황을 경고한다. 시각적 인식 또한 직접적인 감각이나 마찬가지다. 벽난로 앞에 털 양탄자가 놓여 있는 모습을 본다면 그와 동시에 손가락으로 털을 만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재미있기만 한 실험이 아니라 우리 정신의 기능을폭로하는 실험이다. 우리는 환각에서 두 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첫째, 신체에 대한 인식이나 생각으로 우리가 느끼는 신체의 한계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둘째, 여러 가지 감각이 신체의 한계를 느끼는 데 관여하는데, 그중 시각이 촉각을 능가한다. 그래서
‘다감각 환각‘이 언급되기도 한다. 만약 촉각이 지배적이라면, 실험참가자는 오른손으로 왼손을 잡아야 할 때 언제나 허벅지 위에 놓인 진짜 왼손을 잡았을 것이다.

도구의 예시로 돌아가보자.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시각적인 인상으로서 우리가 느낀 ‘수중에 있음(도구성)‘이 주어진다. 망치를 붙잡으면 그것이 우리 몸에 속한 것처럼 느껴진다. 망치를 손에 쥐고 못을 박으려는 순간, 우리는 망치의 머리를 ‘느낄‘ 수 있다. 고무손 실험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자동으로 도구가 우리의 감각하는 몸과 함께 자라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예시를 소개한다.
1990년대 초반, 나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롤러블레이드 유행에 편승했다. 어떨 때는 하루 종일 롤러블레이드를 신고 있었다. 그런데 밤에 롤러블레이드를 벗어도, 마치 계속해서 롤러블레이드를신고 있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 또한 자신의 발에 스키가 붙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하이데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용어를 더 자세히 특정하고 싶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롤러블레이드와 스키가 그것을 신고 있는 사람의
‘족중에 들어간 것이다. 주차할 때도 비슷한 일을 경험한다. 주차하다가 뒤에 있는 차를 박으면, 우리는 마치 스스로가 차에 치인 것처럼 움찔한다.

우리는 마치 우리 자신이 몸에서 독립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영국의 철학자 피터 스트로슨이 말했듯이 이런 이원론은 표면적인것이다. 우리는 ‘나‘라고 말할 때 전체적인 인간으로서의 ‘나’를 가
‘리키지 ‘실제 나‘와 ‘나의 신체‘를 구분하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물질적이며 동시에 정신적인 특성을 갖추고 있다.

실험을 하나 더 해보자. 여러분은 코가 두 개였던 적이 있는가?
아주 간단한 실험이다.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을 교차한 다음양손가락의 손톱으로 동시에 코끝을 문지른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똑같은 속도로 문지르다보면 어느순간 코가 두 개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환각은 모든 사지에서 경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혀가 갈라진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책상 모서리나 휴대전화로도 환각 실험을 할 수 있다. 이 오래되고 널리 알려진 환각은 ‘아리스토텔레스 착각 현상‘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시각적으로는 하나로 보이는 것이 손가락의 촉각으로는 둘로 느껴질 수 있다. 촉각 정보가 마치 손가락이 교차되지 않은 것처럼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양 손가락의 바깥쪽 피부가 대상과 닿을 때는 보통 두 가지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때 신체감각을 발생시키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요소들에 어떤 공통된 작용이 있는지는 아직 과학적으로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잘못된 신체상의 모든 변종에서 이런 요소들이 발견된다. 식욕부진 환자들은 자신이 날씬하다고 인식하지못한다. 마치 머릿속에 깨진 거울이 들어 있는 것처럼 거울에 비친자신의 모습이 계속 뚱뚱해 보이는 것이다. 이들은 잘못된 신체상을 스스로 바로잡을 수 없다. 그래서 병원을 찾은 식욕부진 환자들은 우선 신체 치수를 재지 않은 상태에서 바닥에 자신의 몸의 윤곽을 그려봐야 한다. 그 윤곽 위에 직접 누워보고 나면 환자들은 깜짝놀란다. 실제 몸이 윤곽의 겨우 절반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 치료는자기 인식으로 가는 첫 발걸음이다.

느낌과 앎의 충돌 때문에 발생하는 의학적 증상은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 편두통 또한 일그러진 신체감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부편두통 환자들은 두통을 느낄 때마다 스스로의 몸이 수축되거나 천장을 손으로 만질 수 있을 정도로 높이 발사되는 기분을 느낀다.
런 현상은 ‘앨리스 증후군Alice in Wonderland syndrome‘"이라고 불린다.

즉 인간은 갖고 있지 않은 신체 부위를 느낄 수 있고, 반대로 갖고 있는 신체 부위를 느끼지 못하거나 낯설게 여길 수 있다. 더 극단적으로는, 스스로가 느낀 신체 전부가 사라지거나 갑자기 다른장소에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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