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철학 분야에서는 양립가능론자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다만 점차 판세가 뒤집히는 것 같다. 가장 최근에는 신경과학자들이 논쟁에 참여해 간단한 실험만으로도 인간에게 행위의 자유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토론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이 주장의 근거는 철학의 연구 결과보다 훨씬 뒤처져 있지만, 언젠가 이들의 목소리가 커진다면 철학자들이 답변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리벳은 이 실험에 따라 의지가 더 나중에 나타난다고 결론지었다. 즉 뇌가 이미 손가락을 움직여야겠다고 결정을 내리고, 그로부터 약 300밀리초 후에 우리가 의지를 느낀다는 것이다. 의지의 자유가 과학적으로 반박당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손가락을 움직이기도 전에 이미 그런 행동을 할 것이라는 사실이 결정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행위의 주도자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환상이었다는 말이다.

여러분의 무릎을 다시 한 번 눌러보라. 손가락으로 무릎을 누르기전에 매 순간마다 의지의 충동이 느껴지는가? 물론 어떤 사람들은
‘바로 지금이야"라고 되뇌며 행위에 나서기도 하고, 3까지 센 다음행위를 하기도 하고, 속으로 어떤 충동이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신체적인 행위보다 앞선 또 다른 행위이며,
가설에 따르면 이 행위 또한 의지의 충동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도덕과 법을 어떻게든 개혁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그것이잘못되었다. 인간의 행위를 자세히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우리가 일상적인 도덕과 형법이 제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상황에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달리 할 수 있는 일이없었다"라며 자신을 변호하지만, 이것은 실제로는 "달리 하고 싶은마음이 없었다"라는 뜻이다.

미국의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Harry Frankfurt는 헛소리에 관한논문을 쓴 적이 있다. 오랫동안 오직 전문가들만이 그의 논문에 관심을 보였는데, 곧 한 출판사가 그 잠재력에 주목했다. 프린스턴대학의 유명한 철학자가 그토록 철학적이지 않은 단어를 입에 올리다니! 얇은 책으로 출간된 이 논문은 100만부 이상 팔렸다. 이 책에서 프랭크퍼트는 단순히 헛소리 혹은 개소리라는 단어의 사전적인분석에만 몰두하지 않고 인간적인 현상도 다루었다. 우리는 가끔진실인지 거짓인지 정확히 모르는 주장을 펼친다.

"물론 평소라면 진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 누구도거짓을 믿으려고 하거나 진실을 알지 못한 채로 머물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 어떤 것이 진실이고 우리는언제 이에 대한 지식을 아는가? 진실과 지식은 서로 어떤 연관이 있는가? 이런 의문은 태초부터 철학 분야에 존재했다. 그러다 보니 이와 관련된 논쟁은 철학의 다른 분야에 비해 조금 더 까다로웠다. 그럼에도 애써 토론할 가치가 있는 일이다. 우리가 언젠가 진실과 지식 사이의 차이를 이해한다면 다른 주제를 더 명확하게 보게 될 것이다.

철학 분야에서 진릿값 지지자들은 다른 이들보다 무미건조하다.
이들의 선택지로는 발언, 주장, 논증, 생각, 문장, 이론 등이 있다. 우리는 이 모든 선택지에 대해 때로는 참, 때로는 거짓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은 공통적으로 어떤 명제 Proposition(논리 명제)를 표현한다. ‘Proposition‘이라는 표현은 다루기 힘든 것이지만, 간단하게말하자면 발화된 문장 혹은 발언이나 논증의 내용이다.

진리대응론은 우리 인간과는 상관없이 어떤 명제가 참 혹은 거짓이라고 간주한다. 이런 접근법은 실재론적 진리론에 속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진리대응론은 진리가 어디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이런 결점을 다듬고 손질하는대신 진리가 객관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실재론을 공격했다.

니체보다 먼저 상대주의를 주장한 사람들이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상대주의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그리스의 철학자 프로타고라스 Protagoras다. 그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진리가 각 개개인의 인간에게 달려 있다는 뜻인데, 프로타고라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존재는 보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진리가 문화 혹은 시대, 사회적 계층, 성별, 아니면니체와 같이 종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했다.

지식의 증대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지식이라고 말할 때 ‘정보‘를의미하지만, 사실 정보란 무엇인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도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지식과 설명을 겹쳐서 생각한다. 즉 물리학,
화학, 생물학과 같은 기본 지식을 품은 잠재의식이 있고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간단한 원칙 몇 가지로 설명 가능하도록 만들고, 이를 통해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몇 안 되는 원칙으로 더 많은 것을설명할 수 있다고 해서 더 많은 지식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다.

한 가지 조건이 더 있다. 논증의 연결로 가는 길은 신뢰도가 높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맡는다. 에펠탑과 나 사이에 인과적인 연결이 있어야 비로소 나는 내가 에펠탑 앞에 서 있다는 논증에 다다를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인식‘을 언급할 수 없다. 때때로 이런 연결은 매우 짧다. 에펠탑에서 반사된 빛이 내 망막에 곧장 부딪치듯이 말이다. 한편으로 이런연결은 매우 길기도 하다.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다른사람에게 들어서, 책으로 읽어서, 뉴스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지식처럼 말이다. 오류에 저항력이 없는 인식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와 같은 인식으로 논증을 연결하고 엮어나갈 수 있다.

과학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관련이 없는 어딘가의 실험실 네온 불빛 아래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과학은 모든 사람이 뛰어난 두각을보이는 어떤 능력을 방법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 능력은 바로 이성이다. 우리는 누구나 창문이 닫혀 있음에도 방 안이 갑자기 서늘해졌을 때, 그 원인이 무엇인지 탐구한 적이 있다. 우리는 모두 어릴때부터 자연과학자다. 우리는 물건이 바닥으로 떨어진다거나 식물이 물을 필요로 한다거나 도발이 분노의 폭발을 불러일으킨다는 이론을 세운다.
이런 종류의 해석은 과학을 정확히 설명한다. 과학자들은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다양한 면을 최대한 가정이나 추측 없이보편적으로 묘사하고자 한다. 이들의 명제는 항상 반론 가능해야하는데, 그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내용이 공허할 뿐이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관찰 단계에서는 숫자를 활용한 체계적인 측량이 중요하다.

의학 분야에서는 "치유하는 사람이 옳다"라는 말이 통용된다. 의학의 가장 첫 번째 목표는 건강이며 우선 사람을 건강하게 만든 후에 치유 과정을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검증 없이는 위험이나 우연까지도 효과로 간주할 우려가 있으며 효과가 있는 것과없는 것 혹은 위험한 방법을 혼동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연금술은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진 학문이지만 아주 복잡하고 깊은 미궁일 뿐이었다.

우리는 하나의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해진구성이 아니라 우리가 받아들이는 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여기저기서 속고 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진리는 객관적이다. 어떤 문장이나 주장의 내용이 참인지 거짓인지 여부는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 때때로 우리는 미신을 따르지만 어떨 때는 원칙을 따른다.
"침묵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열어야 한다." » 17우리는 현명한 척하려면 입을 다물어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거침없이 말하며 그 과정에서 헛소리를 한다는 사실도 감수한다. 내가틀리지 않았다면 이것이야말로 그 무엇도 아닌 진리다.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듯이, 소크라테스 본인 또한 이런 방식으로 스스로를 영원하게 만들었다.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예술가, 건축가, 과학자들이 자신이 진행한 프로젝트를 ‘아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향연》의 유쾌한 대화에서 철학적 미학Aesthetics, 즉 미나 예술에 관한 학문이 시작되었으며, 거기서 생겨난 고대의 근본 사상이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미를 성애와 향유는 물론 예술이나 창의성과도 합쳐 대화의 주제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대접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각각의 주제를 섞지 않고 따로 제시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아름답지 않은 예술도 있으며 자연처럼 예술이 아닌 미도 있기 때문이다

펩시 테스트와 바그너 테스트에서 보았듯이 직접 느끼는 감성과판단 사이의 불일치를 우리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한다. 우리는 아름답고 편안하다고 생각한 경험을 여러 가지 근거로 잘못 평가할 수 있다. 상대방이 특정한 답변을 기대한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상대방에게 맞춘 답변을 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속여 취향을 잘못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성실하게, 더 열심히 자신의 경험에 간섭해야 한다.

칸트는 미와 관련된 현대 인과론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아름다운 것이란 향유를 일으키는 것이다. 칸트의 근본사상은 오늘날까지 미학을 지배하고 있다. 칸트는 자신의 저서 《판단력비판》에서 ‘향유‘가 아니라 ‘무관심한 만족‘을 언급했다. ‘무관심‘이라는 말을 사용한 이유는, 우리가 어떤 사물을 자신의 관심이나 취향과는 무관하지만 마음에 든다고 생각할 때만 그것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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